유행과 코트
입동이 지나고 겨울로 들어섰다. 두터운 코트의 질감이 봄바람만큼이나 부드럽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하지만 다른 아이템에 비해 가격이 현저히 비싸다보니 코트의 질감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난해에 큰 맘 먹고 구입한 코트를 한 시즌 잘 입고 고이 옷장 속에 모셔두었다가, 다시 꺼내보면 어쩐지 못 입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코트에도 유행이 있다. 이럴 때는 비싸게 주고 산 것이 후회가 되면서 올 해 유행하는 코트를 다시 사야할까 고민에 빠지게 된다. 부담이 적은 아이템이라면 몰라도 코트같은 아이템들은 가볍지 않은 부담을 준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유행의 끝없는 윤회와 지갑의 무게 사이에서 번민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일까?
원론으로 돌아가 보면 옷은 일차적으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2차적으로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유행은 옷의 이러한 2차적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하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유행은 옷을 통해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그렇다면 유행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이 있다. 옷을 통해 어떻게 잘 보이는가 하는 것이다. 코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코트에서 우리가 먼저 챙겨보아야 할 것은 코트의 유행이 아니라 코트로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이다.

코트의 실루엣
코트는 좀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다. 다른 옷에 비해서 몸을 보호하는 옷 본래의 기능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주로 두터운 소재로 만들어지며, 옷의 맨 바깥을 책임진다. 두텁기 때문에 신체의 굴곡과는 다소간 거리를 두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코트는 다른 패션 아이템들보다 신체로부터 다소 자유로운 모양을 취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코트는 단지 추위를 막기만 할 뿐 아니라 독특한 모양새로 겨울 패션의 모든 것을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대개 옷의 성격은 옷의 가장 바깥쪽 외곽선을 이루고 있는 윤곽선 즉, 실루엣에 의해 성격이 결정된다. 그런데 이 실루엣은 마구잡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구조적 특징을 반영하면서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루엣은 인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몇 가지 전형적인 모양들로 추려진다. 코트와 같이 신체 전체를 감싸는 옷들은 대개 X, A, H, O형 네개의 실루엣으로 구분된다.
코트가 아무리 다양한 모양으로 디자인되었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코트라면 이 4가지 기본 실루엣을 벗어 날 수 없다. 유행도 예외가 안 된다. 유행이 아무리 다양하게 변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기준 실루엣 안에서 변할 뿐이다. 유행도 실루엣의 반복적 변형에 불과한 것이다. 유행이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단위로 순환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모두가 호모 사피엔스 이후로 인간의 몸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선 보아야 할 것은 유행이 아니라 바로 이 4가지 기준 실루엣이다. 이 4가지 실루엣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옷을 입는다는 것이 매뉴얼을 따르는 것처럼 아무 이유없이 유행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표현의 문제, 남의 시선과 나의 미감에 적절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유행에 체포되어 있는 옷에 대한 인식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으며, 유행의 거듭되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열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4가지 실루엣은 무엇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특징들이 있는 것일까?
여성성의 극대화, X라인
2차 성징을 지나면서 여성과 남성은 확연히 다른 신체의 변화가 나타난다. 가슴은 앞으로 나오고, 허리는 잘록해지고, 엉덩이는 인상적인 곡선을 만들면서 뒤로 튀어 나온다. 이렇게 이른바 S라인을 이루면서 여성의 몸은 남자와는 전혀 다른 신체의 아름다움을 이루게 된다.
X라인을 이루는 실루엣은 굴곡이 심한 여성의 신체적 특징들과 관련이 있다. 코트는 신체로부터 제법 간격을 두고 옷의 외곽을 책임지기 때문에 신체의 곡선과는 별개로 디자인 될 수 있다. 보온이라는 코트의 기능성을 생각한다면 굳이 몸의 형태를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설사 코트 안에 있는 신체와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코트가 독자적으로 여성적인 S라인을 만든다면, 설사 두터운 재질로 옷의 외곽을 방어(?)하는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 코트라 할지라도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데에 크게 일조할 수 있다.
코트에서 X라인 실루엣은 남성과 다른 여성의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낸다. 전설적인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의 ‘뉴 룩’이 대표적으로 X라인을 보여준다. X라인은 코트의 허리를 조임으로써 가슴과 엉덩이의 선을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이게 하고, 나아가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과장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X라인의 코트를 입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코트 안에 옷을 간소하게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두꺼운 겨울옷에서 허리를 조여 S라인을 드러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과 배, 엉덩이가 모두 튀어나와 X라인의 코트를 입는 의미가 퇴색된다. 사실 X라인 코트의 묘미는 매끈하게 떨어지는 뒤태에 있다.
라파엘로의 그림 속 여인들처럼 울룩불룩한 실루엣을 연출하지 않으려면 꼭 명심하자. 패셔니스타는 추위에 굴복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남아있는 코트의 A, H, O라인의 실루엣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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