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학대 받은 인체
늘씬한 다리나 하얀 배꼽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그들의 패션 감각 뒤에는 2000년 넘게 가다듬어 온 서양인들 특유의 인체관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양인들은 오래 전부터 홀딱 벗은 사람의 모습을 아무런 가책 없이 길가에 세워 놓았다. 건강하고 매력적인 신체를 프로이트적 시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한 전통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미학의 근본을 이뤄왔고, 당연히 서양의 옷들은 아름다운 신체를 더욱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아르마니 같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옷을 ‘제2의 피부’라고 언급하며 인체 중심의 패션관을 대변했다. 그 과정에서 옷은 신체를 위한 하나의 소품이나 도구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그런 서양의 옷들이 지향하던 신체란 어디까지나 완벽한 비례를 갖춘 몸, 고전주의 회화나 그리스 조각으로 표현된 몸이었다. 그런 몸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옷에 의해 지배당하고, 완벽한 몸으로 보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숨도 쉬기 힘든 코르셋과 새장 같은 파니에, 모든 여성들의 몸을 망가뜨리는 하이힐까지 몸매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는 미명하에 자행되어 온 인체 학대의 역사가 서양 복식사의 다른 모습이었다.
동아시아, 옷과 인체의 조화 그러나 사람보다는 자연을 우선시 했던 동아시아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옷과 인체의 관계를 정립해 왔다. 동아시아의 옷들은 인체와 동등한 자율성을 가지고 만나서 독특한 형태를 구성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옷은 몸매를 드러내거나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어울려, 마치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온갖 생명을 키우는 것처럼 새로운 형상을 만들었다. 평면으로 재단되어 넉넉함과 비례의 미가 돋보이는 한복이 그러하고 여성의 굴곡을 가려 평평하게 만드는 기모노가 그러하다.
이 옷들은 입으면 몸이 황금 비례를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에 상관없이 매우 훌륭한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벗어 놓으면 모두들 얌전한 평면으로 돌아간다. 결국 옷이든 몸이든 서로 종속되거나 부속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신체의 비례보다는 옷을 입었을 때의 비례가 더 중요시되었고, 옷은 단지 몸을 보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조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옷에는 철학이 스며들었고, 논리가 스며들었다. 눈을 파고드는 화려함은 누그러졌고, 때론 사색을 위해 편리함을 팽개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동아시아의 옷들은 서양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만일 이런 동아시아의 패션 전통을 살린다면 현대 패션 디자인은 훨씬 더 다양한 스타일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흰 옷에 한글 붓글씨 쓰는 수준 가지고는 안 된다. 둘러 보면 동아시아의 패션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내 패션의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놓은 디자이너들이 적지 않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일본 패션 디자이너들이 그랬다. 그들의 옷을 보면 동아시아의 전통 옷들도 얼마든지 현대적으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고 우리의 지적 게으름을 반성하게 만든다.
옷에 자율성을 준 일본 디자이너들 이세이 미야케는 그러한 디자이너의 대표격이다. 디자인과 교수나 아티스트들, 아티스틱한 성향의 마담들이 좋아한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한 이세이 미야케는 1970년대 패션의 본고장 파리에서 동양, 일본 디자이너 붐을 일으켰고, 일본 전통 복식, 나아가 동아시아의 전통 복식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현대화될 수 있는지 가능성을 극대화시켰다. 그의 디자인을 보면 다리나 배꼽을 노출시키지 않고도 얼마나 멋있게 보일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림 1의 옷을 보면 편리성을 따지기 전에 우선 옷을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몸과 일정한 여유를 두면서도 자기들만의 독특한 형상을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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