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서 여성복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저가 여성복 브랜드 출시 경쟁이 올 들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출시한 O, Z, C 등을 필두로 하여 올해 들어서도 E, B 등 10여 개의 중저가 여성복 브랜드가 출시됐다.
이들 여성복 브랜드는 대체로 「크로커다일 레이디스」의 성공신화를 벤치마킹해 중저가를 지향하면서 로드숍 위주로 매장을 전개한다는 특징이 있다. 「크로커다일 레이디스」는 캐포츠 풍의 시대적 흐름 위에 대량생산에 따른 원가절감을 로드숍을 통해 소비자에게 값싼 가격으로 돌려주면서 지난 몇 년 사이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이 「크로커다일 레이디스」를 벤치마킹한 중저가 여성복 브랜드들은 대체로 50~100여 개의 매장을 확보하고 연간매출을 500~1천억원대까지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다가오는 가을?겨울 시즌에 앞서 다시 매장을 확장해 대체로 150~200개까지 매장을 확보한다는 계획하에 좋은 매장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때문에 요즘은 브랜드는 많고 도시 내 알짜 매장 구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만큼 노련한 대리점주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브랜드들이 전략매장이라는 미명하에 인테리어비를 지원하고 일정액의 매출을 보장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더 급한 브랜드들은 그것도 모자라 각종 이벤트로 지원을 늘리고 보증금을 깎아주는가 하면 수수료도 올려주고 있다.
이 같이 붐을 이루고 있는 중저가 여성복 시장은 그동안 백화점 중심으로 영업을 해오던 여성복 브랜드들이 국내 내수경기 위축과 백화점 영업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로 궁지에 몰리자 생존의 돌파구로 여기고 있는 대안시장이다.
그러나 이들 중저가 여성복의 출시 붐이 전체 의류 시장의 관심을 여성복으로 끌어모으면서 캐주얼 브랜드의 매출을 위축시키는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즉, 중저가의 여성복이 뜨면서 캐주얼 시장의 매출이 반 토막 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규모가 작은 우리의 패션시장은 한 콘셉트가 뜨면 다른 콘셉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중저가 여성복 브랜드의 대량 출시 붐이 바람직한가를 생각해 보자. 지금처럼 로드숍 중심의 대리점이 활기를 띠었던 때가 IMF 직전인 199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D, N, S, E 등 내로라하는 패션 기업들이 앞다투어 대리점업에 나서면서 대리점 확보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들 패션 기업들은 대리점 보증금으로 자본을 모으고 매출을 확장해 순식간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놀라운 변신을 거듭했다. 도시의 대리점은 권리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패션 기업의 영업부는 연일 더 좋은 매장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런 가운데 소비자 수보다 브랜드 수가 더 빠르게 늘어나면서 매출부진으로 고전하는 매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 매장이 본사에 보증금 환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 본사의 매출부진과 함께 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상황에 이를 즈음 외환위기인 IMF가 터졌다. 재무구조가 점착 악화되는 과정에 있던 패션 기업들은 하나같이 IMF를 이기지 못하고 부도처리 됐다.
지금 여성복들의 로드숍 매장확보 경쟁이 IMF 직전의 상황과 비슷하다. IMF 같은 충격적 환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확장일로의 여성복 브랜드들의 곡예경영이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이제 대량생산에 따른 가격경쟁은 이익률 감소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매장확장 경쟁은 필연적으로 다수의 부실매장을 낳고 이들이 경영압박을 가져올 것이다.
바둑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큰 것은 죽지 않는다’는 이 같은 말에 현혹돼 확대경영 일변도로 나가는 브랜드는 머지않아 곤경에 처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결국 지금 이들 중저가 여성복 브랜드들이 힘써야 할 일은 규모경쟁을 위한 매장 확장보다 브랜드 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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