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수 기업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일본의 사찰건축회사인 공고구미(金剛組)는 587년 백제인 목수 유중광이 일본에 정착해 시텐노우지라는 절을 지으면서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무려 1천428년이나 됐다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오백 년 된 명문가 이야기》라는 책이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긴 하지만 한 가문이 아니고 기업이 천 년을 넘어 생존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최장수 기업은 동화약품으로 올해 창립 108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기업가 입장에서 자신이 공들여 키운 기업이 대를 이어 장수 기업으로 생존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기업의 생명은 의외로 짧다. 일본의 일경비즈니스라는 잡지사가 1896년 이후 100년간 100대 기업의 평균수명을 조사한 결과 대략 30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포춘지가 1970년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1/30이 13년 후 인수, 제휴, 합병 등을 통해 수명이 끝났다고 한다. 이들 기업의 평균수명은 40∼50년에 불과했다.
어렵게 일군 기업이 반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라진다니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변화무쌍한 중국의 경우 패션 브랜드가 10만여 개로 파악되는데 1년에 1천여 개, 하루에 2.5개가 사라져 평균수명이 1.5년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국내 유명 여성복 브랜드 두 곳이 매각파문에 휩싸여 있다. 1978년에 설립된 T사는 우리나라 캐주얼 여성복의 대명사랄 수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T사의 오너는 신병으로 경영을 지속하기가 어렵고 기업을 같이 일구던 동생은 마음이 맞지 않아 회사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또 30대 중반의 장성한 2세들이 있지만 회사의 적지 않은 부채 등을 고려해 기업을 이어받는 데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1987년 창업한 국내 미시 및 캐릭터 여성복의 대명사 H사는 오너 부부의 적극적인 매각 의사와 2세의 승계 욕심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문이다. H사의 매각설은 부가성이 낮은 패션산업의 미래 불투명성과 2세의 경영자질론이 제기되면서 소위 ‘잘 나갈 때 제값 받고 팔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경위야 어떻든 이들 두 회사는 한국의 대표적 패션회사로 창업세대가 경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세대 승계 여부를 놓고 문제가 발생해 우리 패션업계에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국내 패션 기업 중 장수 기업군은 대체로 1970∼1980년대에 출발해 오너가 60, 70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들은 이제 의욕 면에서나 체력 면에서 패션 기업을 계속 이끌어가기가 힘겹다. 그래서 2세대들이 기업을 승계해 의욕적으로 끌고 가야 할 사정이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1세대 패션 기업 창업자들이 스스로를 ‘장사치’로 천시하면서 2세대들을 관료나 학자로 ‘귀하게’ 키운 탓에, 혹은 여러 이유로 부모의 권위를 잃고 ‘부랑아’로 키운 탓에 2세대들이 패션 기업을 경영해 나갈 힘을 배양하지 못한 데 있다. 지금도 많은 패션 기업의 창업세대들은 2세들에게 기업을 승계시켜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 패션 기업들은 미래를 잃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100∼200년의 세월 속에 만들어졌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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