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색적인 간담회가 있었다. 공정위 주재하에 ‘대규모유통사업자 간담회’가 열린 것이다.
권위적인 우리의 공직 풍토로 볼 때 당국이 나서서 약자인 일선 업체 관계자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갖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낯선 모임은 취임 3개월여에 불과한 신임 경쟁국장이 신선한 일을 해보고자 한 의욕으로 평가된다.
이 자리에는 백화점이나 아웃렛, 양판점 등 주로 대형 유통업체를 상대로 납품유통을 하는 업체나 유관단체 관계자 40여 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 간담회에는 참석자들조차도 왜 왔는지 의아해했다. 처음에는 자리가 어색하기까지 했다. 패션 식품 생활용품 등 사업품목별 유관단체의 간접초청으로 참석하긴 했지만 초청 당시에 자세한 모임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리를 준비한 공정위 관계자들 또한 그리 매끄럽게 준비된 자리 같지는 않았다. 우선 참석은 했지만 참석자들은 쉽게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혹시 ‘잘못 놀린 입’이 유통업체에 알려지기라도 할까봐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공정위측은 ‘업체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좋다’며 비밀 보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몇몇 참석자들이 입을 열어 유통관행상 문제점들을 공정위에 따지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돠자, 이에 당황한 공정위 관계자는 관련 규정을 들추며 발언자의 무지를 책망하는 말을 했다. 이쯤 되자 일부 참석자들 사이에는 ‘왜 왔는지 모르겠다. 돌아가자’며 회의 중간에 일어서려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경쟁국장이 “여러분의 애로사항을 듣고자 어렵게 마련한 자리”임을 강조하며 주위를 진정시키자 몇 가지 건설적인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한국패션협회 관계자들은 유통업체들의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 카드 가매출 유도, 공룡 유통업체의 폐해, 음성적 불공정행위 강요, 부당한 광고요금 청구, 일방적인 입퇴점 요구, 저가 할인상품 판매 강요 등을 지적했다. 아울러 업계의 애로사항을 파악하는 데 유관단체를 활용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 문제는 대부분 공정위가 그 동안의 업무 진행 경험이나 업체별 여론조사 등을 통해 이미 파악하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문턱 높은 행정관청이 약자 입장에 있는 일선 업체 관계자를 불러서 직접 어려움을 파악하려 한 ‘찾아가는 행정의 자세’다. 공정위의 주요 업무가 거래상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 동안은 관계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많았기에 현장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만약 이 같은 모임을 좀더 발전시켜 정례화한다면 진행자나 참석자나 준비된 상태에서 내뇽이 충실한 모임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위측은, “공정위에서 이 같은 모임을 상설화하려면 법을 고치든지 새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며 절차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외국의 경우 관청과 민간을 연결해 주는 민관 합동의 각종 자문위원회가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이들은 때로는 관청의 감시자로, 때로는 관청의 정책 자문자로, 때로는 정책의 시행을 돕는 보조자 역할도 한다.
우리도 이번 공정위의 간담회를 좀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공정위가 목적하는 ‘약자보호’에 대해 좀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객관적인 추진력도 얻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유통업계도 ‘갑’과 ‘을’이 대등한 위상을 가질 수 있을 때 건강한 유통문화가 정착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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