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성’을 강조하는 고급의류의 유통은 사실상 백화점에 의존하고 있다. 백화점의 주력 매출은 패션의류에서 일으킨다. 때문에 패션과 백화점의 ‘동거’는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백화점과 패션 브랜드의 불균형적 지위다. 1990년대 초 우후죽순 생기던 백화점이 IMF를 거치면서 ‘강자’는 비대해지고 ‘약자’는 대부분 정리됐다. 이제 백화점 업계는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이른바 빅3가 지배하고 있다.
현재 백화점은 롯데 22개점, 현대 12개점, 신세계 7개점, 갤러리아 6개점 등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소수 백화점의 과점현상은 자연히 유통시장에서 ‘우월적 지위’의 막강한 힘을 갖는다. 때로는 폭력적 횡포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매출의 대부분을 과점 백화점에 의존하고 있는 패션 브랜드들은 아무런 대항능력이 없다. 대항능력이 없는 패션 브랜드에 가해지는 ‘횡포’는 긴 불황과 맞물려 이중고가 되고 있다.
패션 브랜드의 고급 백화점 입점 여부가 브랜드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브랜드들은 고급 백화점에서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매출이 부진한 브랜드 입장에서 가장 쉬운 해결책이 ‘가매출’을 일으키는 것이다. 각 백화점이 8월 MD개편을 앞두고 브랜드평가 자료를 낼 때 대체로 5월 매출까지를 기준으로 한다. 때문에 ‘B급 매장 이동’이나 ‘퇴점 위기’를 넘기려는 브랜드들의 일부 백화점 4∼5월 가매출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는 월 1억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브랜드의 가매출은 자연히 타브랜드의 무리한 가매출 경쟁으로 이어진다.
바이어들의 가매출 유도도 ‘백태’다. 행사장을 열어주고 ‘일일 매출 목표’를 준다. 매출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즉시 행사철수는 물론, 다음부터 행사장 사용 등에 각종 불이익이 따른다. 이것은 ‘가매출을 일으켜서라도 매출 목표를 채우라’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백화점의 매장 평가점수 중에는 ‘브랜드협조’ 항목이 있다. 바이어들이 이 항목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압력수단으로 악용한다.
장기불황 속에서 전년보다 매출이 계속 떨어지므로 바이어들의 근무 평점에 ‘흠’이 갈까봐 직접 가매출을 요청하기도 한다. 출장판매를 만들어 가매출을 강요한다. 가매출은패션업계를 황폐화시키는 ‘악성종양’과 같은 것인데도 당국에서는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다.
과점 백화점의 횡포는 가매출 외에도 다양하다. 백화점간 브랜드의 타백화점 입점방해는 심각하다. ‘그 매장에 입점하려면 우리 백화점의 모든 매장을 철수해야 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모 브랜드가 한 새로운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기존 백화점 바이어에게 ‘5개 항의 각서’까지 썼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판매수수료를 인상하는 것은 언제나 일방적이다. 심지어는 소급적용까지 한다. 과점 백화점들이 매출부진을 수수료 인상으로 해결하려 한다. 수수료 1%를 올리면 매출 10% 신장 효과를 낸다고 한다. 바이어들은 지역점을 열면서 지역의 상권에 맞는 브랜드를 입점시켜 매출을 올리기보다 중앙의 유명 브랜드를 강제 입점시켜 ‘고급 백화점’ 이미지를 억지로 가져가려 한다. 하지만 부실매장을 철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같은 백화점의 횡포가 가능한 것은 일부 백화점의 지나친 시장지배, 즉 과점 때문이다.
백화점 과점화, 이제는 막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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