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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이 생각나는 시기다

2006-03-07 오전 10:50:55

영국에서는 근면을 중요한 사회덕목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영국인들 중에는 일중독자가 유독 많다. 이 때문에서 유럽인들 사이에서 영국인들은 ‘일벌레’로 통한다. 이런 영국에 지난해 말부터 새로운 풍속도가 유행하고 있다. 경쟁과 속도에서 벗어나 자기만족적 삶을 추구하는 다운시프트족, 일명 ‘느림보족’이 늘고 있는 것. 생활의 패턴을 여유롭게 바꾸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이러한 현상이 ‘워커홀릭’이 가장 많은 영국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 욕심에 관한 한 우리나라 역시 영국인에 못지않다. 이런 우리 사회에 지난 1일부터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됐다. 주5일제 시행은 앞만 보고 성장만을 추구했던 우리 사회에도 이제는 삶의 질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의식 변화를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 시스템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소비행태 변화와 내수 일축으로 최근 패션업계는 침체기를 맞고 있다. 침체가 이어지다 보니 패션 기업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에 장사가 안 돼서도 그렇지만, 그보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더 큰 고민이다. 소비행태 변화로 과거의 데이터는 현재와 미래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재충전의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 더 이상 짜낼 아이디어도 없다. 새 사람을 찾아보지만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패션기업들은 아직도 과거의 시스템과 마인드로 움직이고 있다. ‘출고 시점을 앞당겨 빨리 뽑아먹겠다’, ‘매장 출점을 앞당겨 변화를 추구하겠다’, ‘팔리는 상품을 빨리 체크해 빨리 공급하겠다’ 등 아직도 ‘빨리빨리’만을 외치고 있다. 패션은 타산업에 비해 라이프스타일이 짧다. 유행과 일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오늘의 패션이 내일도 그러리라 확신할 수도 없다. 이런 패션을 비즈니스로 하다 보면 ‘빨리빨리’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빠르다는 것이 경쟁력이 된다는 것도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우리 패션은 ‘빠름의 미학’에 사로잡혀 정도 이상으로 빠르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감성’이 뜬다고 너도나도 ‘감성’을 내세우다가, 트래디셔널이 좋다니까 그리로 몰리고 다시 스포티즘으로……. 결과는 어땠나. 과다경쟁으로 제살만 깎아먹고 공급과잉으로 소비자의 식상함만을 부른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조금만 느렸더라면 지금쯤 감성도 트래디셔널도 스포티즘도 모두 공존하지 않았을까? 소비자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느림의 미학’을 패션 기업도 한번쯤 생각해 볼 시기가 아닌가 싶다.

박찬승 기자
pcs@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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