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이 쓴 《신화는 없다》라는 책이 있다. 거대재벌 현대그룹의 출현, 그 성장의 중심에 있었던 가난한 대졸사원 출신 이명박의 성공, 이것을 사람들이 ‘신화’로 칭송할 때 그는 ‘신화는 없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이명박 시장은 현대건설 회장직을 그만두고서야 결혼 후 처음으로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오너였던 정주영 현대그룹 전 회장은 부지런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정 회장의 친척 중 한 명인 김영주 한국프렌지회장이 TV에 출연해 정 회장이 어느 해 겨울 새벽에 일어나서 “해가 안 뜬다”고 화를 냈다는 전설과도 같은 사실을 증언했다. 정 회장의 천성적 부지런함은 현장경영으로 이어져, 그룹사가 그리 많은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 현장에 들르는 통에 직원들이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지난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가 ‘부지런함’이었다. 이 시기에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죄’가 됐다. 부지런함이 ‘정의의 잣대’였던 데는 사장이나 종업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종업원들은 저임금에 혹독한 노동을 견뎌내야 존재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터진 것이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이나 ‘YH 여공 시위사건’이다.
시대는 변했다. 정부가 나서서 주5일 근무제를 법으로 정하고 지난 7월 1일부터 1천 명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장기불황과 기업의 도산이 줄을 잇는 경제현실 앞에서도 주5일 근무제를 서둘러 시행해야 하는지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주5일 근무제 시행을 끈질기게 요구해 왔던 ‘혜택받은 노동자집단’의 주장은 ‘무더기 명퇴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의 경제구조가 이미 노동력에 의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들의 논리가 일부 맞다고 해도 당장 중소기업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주5일 근무제 시행 여부가 ‘일류기업’을 구분짓는 분명한 잣대가 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우수인력 기근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부는 후폭풍은 심각하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패션계 근무 종업원들의 박탈감은 그렇다치고 도산 직전의 수많은 패션기업에 당장 비용증가를 불러와 사정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제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불안하다. 우리보다 먼저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한 선진국의 예를 보면, 기업들이 생존하기위해서는 시설을 현대화하고 사람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우리도 방법은 없다. 설비개선으로 생산성을 늘리고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개발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다시한번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맞게 될 것이다. 고실업사태는 심화될 것이다. 노령인구 증가는 가계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 30이 넘어도 취직을 못하는 컹거루족이 늘어나니 그들 마저 먹여 살려야 한다.
이제 살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적어도 상당기간 소비촉진을 통한 경기회복은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호주머니는 비고 시간은 많아진 소비자들은 소비의 우선순위를 ‘과시’를 위한 패션보다 자기계발과 가족단위 외출, 건강관리에 두게 된다. 자연히 소비가 절제된 패션계의 찬바람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패션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초절약형 의류의 박리다매 전략이나 확실한 차별화를 통한 고부가가치의 패션리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M&A 등을 통한 철저한 경영합리화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혹은 밖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정말 심각한 생존투쟁을 지금 막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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