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전국 주요 상권 매출이 바닥을 치고 있다. 군소 상권은 물론 명동, 동성로, 충장로 등 핵심상권도 월매출 1억원을 넘는 매장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웬만큼 잘 나가는 브랜드가 아니고서는 중심상권에서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한다. 위치와 규모가 좋은 점포들도 투자비용이 적지 않아 버티기 어렵다는 것.
그러나 바닥세를 보이는 매출과는 달리, 점포를 얻기 위한 임대료와 권리금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상권과 점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부 점포는 많게는 두 배 가까이 임대료가 올랐다고 한다.
매장을 운영하는 대리점주도 마찬가지. 브랜드의 성장 잠재력을 보고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좋은 조건이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몇몇 상권에서는 지역 상인들끼리 담합해 인테리어비 지원은 기본이고 최저 마진 가이드 라인까지 정해 놓고 있다.
“불황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매장에 들어올 사람은 줄을 서 있다”는 건물주 배짱과 “매출이 바닥을 치고 있으니 그만큼 안정된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조건은 기본”이라는 대리점주의 이기적인 요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패션업체들의 입장 또한 완강하다. 경기가 좋았을 때는 광고비라고 생각하고 조건을 수용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 당장 눈앞에 나의 생존 문제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이익도 나지 않는 조건을 수용할 수 있느냐는 입장이다.
실제 최근 한 유력 캐주얼업체는 명동에서 2개 직영매장을 철수했다. 2, 3천만원 수준의 월세를 2년 새 두 배로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리점으로 운영하는 것도 검토했지만 1억원 안팎의 매출 보장과 시설비 지원이라는 말에 미련을 버렸다. 이 업체는 앞으로 상권과 점포 입지가 다소 빠지더라도 투자비용이 낮은 매장 위주로 유통을 전개할 계획이다.
또 다른 캐주얼업체도 마찬가지이다. 상반기까지 매출 상종가를 보이다가 최근 다소 주춤한 이 브랜드는 매출은 다소 떨어졌지만 느긋한 입장이다. 애초 대리점을 개설할 때 무리한 조건을 요구하는 점주는 아예 배제함은 물론, 점주들에게도 무리한 투자는 권하지 않았다.
“매장이 크고 위치가 좋으면 당장은 유리하겠지만 시장이 위축되면 점주가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 영업 책임자의 생각이었다. 또 매장이 넓은 만큼 적지 않은 재고를 매장에 깔아놓아야 하니 본사 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것.
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설령 경기가 단기간에 회복한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폭발적인 매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만큼 유통이 세분화됐고, 소비자들 입맛 또한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까다로워진 소비자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제조자와 유통업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높은 마진보다는 적극적인 마케팅과 서비스, 본사와 협력을 통해 소비자들로부터 이익을 챙기겠다는 유통업자의 의식전환이 절실하다. 패션업체 또한 일단 대리점을 오픈했으면 그 점포가 최대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근 패션 브랜드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만큼 잘 되는 브랜드 숫자가 줄어들고 있고, 잘 나가는 브랜드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또 이미 잘 나가는 브랜드를 잡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뒤따라야 하고 이는 곧 부실 매장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패션 브랜드 대리점은 지역 상권에서 본사를 대신해 브랜드 가치와 이익을 극대화시켜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브랜드의 성장에 따라 이익이 좌우되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조건보다는 브랜드의 성장 잠재력을 보고 투자하는 진정한 의미의 대리점을 기대해 본다.
정인기 차장
ingi@fi.co.kr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