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
얼마 전 호텔업계에 있는 분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전에는 5성급 럭셔리 호텔을 주로 운영하던 대기업들이 이제는 비즈니스 호텔로의 확장까지 넘보고 있단다. 그는 대기업이 모든 종류의 시장을 독식한대서야, 어떻게 중소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호텔 뿐 아니라, 지금 모든 업종이 이런 처지에 놓여 있다. 대기업은 크고 작은 모든 종류의 업종으로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중소기업들은 이를 방어하느라 고사 직전까지 내몰려 있다.
과연 이런 흐름은 타당한 것일까. 그리고 타당하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막을 수 있는 흐름일까.
패션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 제일모직이 「에잇세컨즈」를 론칭하였을 때, 그리고 강남역의 전통있는 제과점이 있던 자리에 「에잇세컨즈」가 건물 하나를 통으로 털어 매장을 오픈하였을 때, 필자는 그리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패션계에 수많은 저가 캐주얼들이 그야말로 벼랑 끝까지 내몰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요즘들어 조금씩 생각이 달라진다. '대량으로 생산하여, 저렴한 가격을 매기고, 이를 대량으로 판매한다'는 공식은 사실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던가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대기업의 본질이란 바로 그러한데 있다. 바로 그 때문에 패션에선 독보적 위치에 올라서기 어려웠다.
과거 패션계는 디자인의 캐릭터가 최우선 밸류였으므로, 커다란 몸집을 움직이는 대기업과 1인 기업처럼 움직이는 중소기업이 경쟁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다. 디자인의 캐릭터는 소비자에게 그다지 큰 밸류가 되지 않았고, 대신 대기업만이 줄 수 있는 다른 밸류들이 중시되고 있다.
바로 대형 매장의 운영을 통해, 저가의 제품도 백화점 같은 환경에서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 밸류다. 이것은 중소기업이 도저히 줄래야 줄 수 없는 대기업만의 강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장 경제에서의 비즈니스는 원래 대기업이 승리하도록 짜여진 게임판이고, 그들이 이 게임에 대대적으로 뛰어든 것은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는 건 사실 패자들의 유치한 뒷담화와 다를 바 없다.
중소기업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참으로 난처하다. 그러나 불황이 길어지면서 다행이도 우리는 점차 그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밀렸던 동네빵집들 중에는 이제 대기업을 원망하기 보다, 대기업이 줄 수 없는 밸류로 무장하고 나서는 가게들이 늘어가고 있다.
독특한 메뉴,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수제 빵으로 승부하거나, 빵을 굽기 전, 가게에서 직접 제분하는 방식 등 중소기업다운 손맛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호텔업계도 다르지 않다. 대기업들은 대규모의 비즈니스 호텔과 5성급에 주력하는 대신, 소규모 호텔들은 서서히 부띠끄 호텔로 거듭나고 있다. 부띠끄 호텔이란, 그야말로 호텔의 부띠끄, 즉 주인의 장인정신으로 서비스가 이뤄지는 호텔을 의미한다. 대기업의 규격화된 럭셔리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과 정감을 제안하는 호텔들로, 서서히 대기업형 호텔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은 어떠할까? 패션의 중소기업들도 이제 대기업이 갖지 않은 강점을 찾아 무장해야 한다. 모방과 대량생산은 대기업의 길이지, 중소기업의 길이 아니다.
아직도 명품 모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트렌드로부터 영감을 얻되, 모방이 아닌 재창조의 길을 걸어가지 못한다면, 이는 지는 싸움에 스스로 뛰어드는 바보와 같다.
오랜 불황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과거 패션계에는 ‘대기업은 패션을 못한다’는 말들이 횡행했다. 이제 대기업이 패션을 하는 길을 찾았으니, 중소기업 또한 자신의 길을 새로 찾아야 할 때다.
김소희 대표
rosmary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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