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큰 인기리에 막을 내린 공중파 드라마로 ‘구가의 서’가 있었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인 이승기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인데 흥미로운 구성과 재미있는 스토리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반인반수이다. 반인반수는 절반은 사람이고 절반은 짐승을 의미한다. 어찌보면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적당한 비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수십년 동안 마케팅 필드에서 전문가 소리를 들어가며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야구의 승률처럼 꼭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장조사와 전문 대행사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기획된 마케팅 플랜이 정작 시장에 접목되면, 당초 기대와 달리 시장 반응이 꼭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이때마다 마케팅 전략 자체의 문제점을 고민하기 보다는 ‘국내 시장이 아직 받쳐주지 못해 안 된 것 같다’며 외부 탓을 종종 했었다. 이런 내가 막상 마케팅 책임자가 되어 후배 직원들의 마케팅 활동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깨달았다.
말로는 “소비자의 니즈를 알고 감성 마케팅을 펼친다”고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현학적인 마케터의 관점에서만 시장을 본 것은 아니었던지 낯이 뜨거워진다.
회사에서는 마케팅 전문가이지만 나 또한 주말에는 인근 대형마트(DC채널)에 가서 물건을 구매하는 한 사람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요즈음 대형마트는 그 어떤 유통 채널보다 제조사들의 시장 공략이 매우 치열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른 곳을 가지 않더라도 한 장소에서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매번 대형마트를 갈 때 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기업들이 왜 그리 소비자의 감성을 헤아리지 못할까’ 아쉬움이 많았다.
이들도 나 같은 마케팅 전략가로서 소비자에게 어필되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했을 텐데 정작 주인공인 소비자들에게는 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입점한 대형마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한 여름철이다 보니 다양한 주류 회사와 음료 회사들이 자사의 신제품 홍보를 위해 열띤 시음회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식음료회사 입장에서는 시음 행사보다 강력하게 소비자의 구매 행동을 유발하는 장치는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여름 시장을 겨냥한 시음 행사를 너도나도 하고 있지만 정작 시음을 권유하는 현장 도우미들의 태도가 문제였다. 시음 후 관심을 보이는 소비자의 질문에 응대를 잘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품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하고 주어진 멘트만 나레이션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소비자가 무알콜음료와 캔막걸리에 대한 차별점을 물어보았지만 내용을 몰랐다. 주어진 대본을 나레이션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모든 시음 행사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 직원이 아닌 외부 대행사 직원이 하다보니 정확한 제품 이해도도 낮고 현장에서의 R&R(Role and Res ponsibilities·올바른 역할과 책임)이 정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정작 이 프로모션을 기획한 본사 마케터는 자신의 기획안이 이렇게 시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마케터들 사이에서는 훌륭한 마케터가 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기획력 못지않게 공략해야 될 마켓, 즉 바닥시장을 잘 알아야 한다는 철칙이 있다.
많은 마케터들이 이 기본적인 상식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잘 실현하는 마케터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는 시장은 영업부서에서 책임지고 관리해야 될 채널로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사실 폼나는 마케터라고 하면 기획력과 멋진 프리젠테이션이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마케터들이 더 많다. 과거 신임 마케터였을 때 “마케터가 되기 이전에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라고 했던 어느 선배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반인반수, 때로는 동물적인 마케터의 본능으로, 때로는 나 또한 일반적인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수많은 소비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려고 한다.
김정민 애니모드 마케팅 그룹장
karam@anymo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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