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슬로 패션, 한국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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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2013-05-27 오후 3:08:12

박가영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로 인한 사망자가 현재 600명을 넘어섰고 아직도 계속 사체가 발견되고 있다.


최악의 의류공장 사고에 대해 교황 프란치스코는 “노예노동은 신(神)을 거스르는 것”이라 분노했고 ‘패스트 패션’에 대한 세계의 비판여론도 뜨겁다. 방글라데시는 값싼 인건비로 인해 패스트 패션의 주요 생산기지였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공급하고 소비하는 패스트 패션이 지구 환경의 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대급부로 지속가능한 슬로 패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H&M, ZARA, UNIQLO 등 패스트 패션을 주도하던 글로벌 SPA 브랜드는 알러지나 새옷 증후군같은 건강문제 유발 상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임금과 초과근무의 노동착취, 생산과 폐기과정에서의 환경오염과 관련되어 이미지가 점차 실추되었다. 반면 영국의 바버(Barbour)와 옥스팜, 일본의 피플트리, 국내의 에코파티 메아리와 터치포굿(Touch4good) 등 슬로 패션을 제안하는 브랜드들에 대한 애호가 늘어났다. 하지만 슬로 패션의 키워드인 느림, 정성, 건강, 친환경을 보면 굳이 깊이 고민하거나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예로부터 입어왔던 한국복식은 그 자체가 슬로 패션이다.


한국복식의 특징이자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조각보와 색동은 느림과 정성을 패션이라는 언어로 표현한 산물이었다. 평상시 한복을 만들다가 남은 자투리천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이를 연결하여 보자기를 만들거나 섶, 소매 등 옷의 특정 부분을 만들 때 재활용하였다. 크고 작은 옷감 조각을 펼쳐놓고 배색하고 한땀한땀 이어붙이는 작업도 시간과 정성을 요하거니와, 재료를 모으는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음이 분명하다.
조각보과 색동은 단순한 재활용인 리사이클링(Recycling)을 뛰어넘어 재활용 자원에 디자인을 입혀 부가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링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한국복식에 관련된 풍속과 상징은 한결같이 건강과 친환경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수한 노인의 옷으로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만들어 입히면 아기가 장수한다’는 속담은 건강하게 오래사는 ‘장수 기운의 전달’이라는 표면적 이유 속에 내재적 가치 또한  잠재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새로 짜서 억세고 뻣뻣한 옷감보다는 오래 입어서 여러번 빨고 부드러워진 옷감으로 아기의 여린 피부를 보호할 수 있었고, 곧 태워버리거나 묻어버려야 할 노인의 옷을 아기의 옷으로 자연스럽고 기분좋게 재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예로는 ‘수의로 마련한 원삼을 더 많은 신부에게 빌려줄수록 더 오래 산다’는 속담을 들 수 있다.


원삼(圓衫)은 결혼용 예복이자 수의로도 입혀진 옷이었는데, 제작비용이 고가여서 아무나 만들어 입을 수는 없었다. 이 속담은 부자집 마님이 수의로 입고자 원삼을 장만하고 나면 동네 신붓감들은 마님의 장수를 위해서 당당하게 원삼을 빌려입을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무료로 대여하고 마님은 무병장수하는 마을의 윈-윈 전략이었다.


이밖에도 무명, 모시, 삼베, 비단 등 천연섬유직물과 쪽, 괴화, 소목, 홍화, 감물, 오배자 등 천연염색 역시 느림과 정성과 건강과 친환경을 바탕으로 한다. 박음질이 아닌 홈질로 만들었다가 세탁 후에는 유행에 맞는 배래선과 깃선으로 다시 바느질해 입고, 오래 입어서 닳고 해진 어른 옷은 그 부분을 피해서 어린이 옷으로 리폼하는 등 의생활 전반에서 착한 옷, 착한 라이프스타일을 엿보게 된다.


현재의 옷을 버리고 과거의 한복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복식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슬로 패션의 요소들을 추출하여 현대 패션에 적용시킬 때, 진정한 한국적 슬로 패션의 가치를 찾고 구현하는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박가영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gayoung21@sew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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