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경기가 장기 침체로 이어지면서 민심이 흉흉하다.
이러한 때일수록 ‘사람 사는 정’이 아쉽다. ‘서로 토닥여주고 미소지어 주는’ 작은 인정이 그립다.
마침 추석명절이 얼마 남지 않아 어려운 가운데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부유하든 부유하지 않든 가을걷이의 시작을 알리는 추석은 왠지 풍요함을 준다.
그래서 흔히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생겨났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명절 밑이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소위 ‘인사’다. 개인은 개인대로 친지며 웃어른, 평소 가까이 지내는 분들에게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지만 기업하는 사람들은 ‘거래처’에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최근 정부 모 부처의 차관이란 고위공직자가 돈 100만원을 받다가 적발돼 불명예 퇴직한 사건을 두고 말이 많다.
한국 최고의 엘리트였을 그가 일생을 바쳐 성취한 고위공무원의 자리가 하잘것없는 봉투 하나로 일순간에 무너졌고 창창한 앞날도 사라졌다. 그가 ‘촌지’를 받은 것이 아마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게 연민의 정이 남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런가 하면 며칠 전에도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2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문제가 됐고, 전직 장관이자 여권의 실세 의원이 1억원의 명분 없는 돈을 받아 구구한 변명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검은 돈’은 너무 흔한 일이라 요즘은 화젯거리도 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 주변은 ‘검은 돈’의 거래가 너무나 넓게 지배하고 있다. ‘인사’는 ‘보답’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패션 유통을 하다보면 거래처인 대형 유통업체 간부들에게 시시때때로 인사를 하게 마련이다. 평시에는 ‘촌지’ 형식으로, 명절이면 ‘떡값’이란 명목으로 인사가 오간다. 특히 명절이 되면 이 인사가 업체 입장에서 적잖은 골칫거리다.
명절 밑이면 각 패션 기업의 간부나 영업본부장의 전국 순회가 시작된다. ‘떡값’을 돌리기 위한 순회방문인 셈이다. 보통 백화점 1개 점포에 관계자가 4∼5명이 되므로 1인당 20만원 정도로 해서 최소한으로 계산해도 대략 100만원 정도가 나간다. 이때 30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는 패션사는 ‘매장 인사’로만 3천만원 이상이 나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더구나 매출 마진이 점차 줄어드는 현실에서 패션 기업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백화점의 경영진에서는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사내 자정교육을 강화하고 있고 게시물도 붙인다. 거래업체에도 이 같은 취지의 공문을 보낸다.
심지어는 감사팀을 가동해 명절이 가까워지면 주요 간부의 집 앞에서 감시활동을 펴기도 한다. 백화점들의 이 같은 노력으로 우리 주변에서 떡값문화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일부 간부들은 작은 선물에도 기겁을 하며 거절한다. 집으로 배달되는 선물을 모두 문전에서 돌려보낸다. 심지어 모 백화점은 촌지를 받지 않는 기업풍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의 촌지 문화는 뿌리가 깊다. 돈을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아이디어가 백출한다. 책 속에 돈봉투를 넣어 전달하는 매너맨(?)이 있는가 하면, 잠그지 않은 자동차에 넣어두기도 한다. 회사 인근에 맡겨두고 찾아가게 하기도 한다. 직장인 입장에서 보면 ‘떡값’은 늘 박봉에 시달리다가 모처럼 작은 봉투들로 호주머니가 두둑해지고 보람을 느끼는 재미가 있다. 업체 입장에서도 모처럼 ‘성의’를 보일 기회이기도 하다.
‘떡값’이 사라져야 할 잘못된 유산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정서로 볼 때 ‘안 주고 안 받는’ 원칙론은 왠지 맞지 않는 느낌이다. ‘나눔의 정’이 많은 민족이어서 그럴 것이다. 한 패션업체 간부는 신간 베스트셀러를 들고 다니면서 평소 인사로 대체한다. 그는 촌지나 떡값을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우리 사회도 작은 인사로 감동을 주고 감사히 받는 풍토가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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