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가을의 일이다. 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던 중 한 여성복 브랜드의 ‘신진 디자이너와 콜래보레이션 제품 출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왔던 길을 되돌아 매장을 찾아가니 한쪽 구석에 같은 내용의 팝업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매장 이쪽 저쪽을 다 들쑤셔도 콜래보레이션 라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도 “글쎄요.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서…”라는 황당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판매가 부진한 건 당연지사. 결국 그 브랜드는 지난 F/W 시즌을 끝으로 콜래보레이션 라인을 접었다.
다른 브랜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개성있는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신진 디자이너와 활발한 협업을 벌이던 모 브랜드. 이제 더 이상 신진 디자이너 상품은 다루지 않겠단다.
브랜드 관계자는 “안 팔리니까요”라며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 디자이너들과 작업을 해봤는데 상품성이 떨어지더라고요. 팔릴 수 있는 옷을 만들어야 하는데 디자이너들은 본인 취향에 대한 고집이 있어요. 게다가 협업 과정도 번거로워요. 원단 구하지 못하면 우리가 원단 가게 소개시켜줘, 봉제 공장 못찾으면 가서 연결시켜줘,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는데 재고로 남으니 곤란하죠.”
이렇듯 패션 시장에서 신진 디자이너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상생의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쿠론」이나 「쟈뎅 드 슈에뜨」를 인수해 육성하는 코오롱 같은 성공적인 케이스는 극히 일부의 이야기다. 편집숍들은 자금난으로 하나 둘 문을 닫거나 규모를 축소시키고 있고, 콜래보레이션과 팝업 스토어는 단기 행사로 그치기 일쑤다.
물론 한 두번의 테스트만으로 속단하는 기업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리테일 구조가 자리를 잡으려면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리테일 비즈니스가 활성화 되기까지는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국내 시장도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리테일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다.
결국 신진 디자이너들은 치열한 장기전을 벌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러 가지 전략이 필요하겠지만 원론적인 개념부터 짚어보자면 ‘패션은 상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익이 나야 투자하고, 투자를 해야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다.‘내가 만들고 싶은 옷’이 아닌 ‘소비자가 원하는 옷’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디자이너 고유의 색까지 놓으라는 말은 아니다. 팔릴 수 있는 아이템으로 고정매출을 확보하고 독창적인 아이템으로 브랜드의 정체성도 살려야 장수할 수 있다. 매 시즌 독자적 감성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도 상품성을 우선 고려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볼 필요가 있다.
최은시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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