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이너 지원사업 홍수다.
현재 신진디자이너 육성사업을 펼치고 있는 정부 기관은 지식경제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경기도, 대구시, 서울 강남 등 줄잡아 5곳이 넘는다. 지원 금액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디자이너 별로 성과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첫 회 참가에서 10만 달러 이상의 수주를 올리는가 하면 어떤 디자이너는 허탕만 치고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실력에 따른 차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가 봤을 때 분명히 성과가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디자이너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거나,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디자이너가 나름대로 좋은 성적으로 귀국하는 사례를 보면서 의문을 갖게 됐다.
얼마 전 만난 인디 디자이너 K씨는 인터뷰 내내 울상이었다. 최근 첫 번째 참가한 해외 전시회에서 수주 성과가 그야말로 ‘꽝’이었다는 것.
“그나마 참가비의 80%를 지원받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손해를 볼 뻔 했다”는 K씨는 “해외 여행 한번 싸게 했다고 치죠. 뭐”라며 애써 웃음 지었다.
K씨의 소식을 들은 가방 디자이너 L씨도 맞장구를 쳤다. L씨는 “이름난 트레이드 페어라는 얘기를 듣고 참가한 전시회에서 허탕을 쳤다”면서 “이후 몇몇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문의 메일이 왔지만 절차가 복잡해 해외 진출은 일단 접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성복 브랜드를 전개하는 디자이너 P씨의 성과는 달랐다. P씨는 최근 강남구청의 지원을 받아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가했다. 현장에서 성사된 수주는 미미한 수준. 그러나 P씨는 페어 이후 뉴욕의 유수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과 몇몇 편집숍에 자신의 상품을 공급하게 됐다.
세 명의 디자이너 모두 조건은 비슷했다. 협회나 정부 지자체 등지에서 참가비의 일부를 지원받았고, 인디 브랜드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동등하게 받았다.
무엇이 이들의 차이를 만든 걸까. 기자는 P씨의 소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저를 포함해 10명 안팎의 디자이너들이 전시회 참가비의 80%를 강남구청에서 지원 받았어요. 좀 쑥스럽지만 ‘나도 국가대표다’라는 생각에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수주도 중요하지만 해외 전시회는 한국 패션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기도 하잖아요. 저 때문에 지원금을 받지 못한 디자이너들을 위해서라도 더 적극적으로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P씨는 자세부터 남달랐다. 그는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전시회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자신의 부스를 방문한 바이어들에게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어시스트 몇 명만 세워놓고 종적을 감춘 몇몇 디자이너와는 확연히 비교됐다.
또 P씨는 이전 참가자들로부터 페어 현장보다 이후에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전 정보를 접하고, 현장을 방문했던 바이어들에게 일일이 장문의 편지와 함께 브랜드 소개자료를 보냈다. 이렇듯 노력 끝에 그는 첫 참가에 상당한 수주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위의 K, L, P씨의 사례처럼 해외 전시회 성과는 디자이너의 자세와 정신력, 열정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안타깝게도 해외 전시회 참가 디자이너들 중에 일부는 포트폴리오에 한 줄 올리기 위해서, 또는 시장 조사 차원에서 사업비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국비 지원을 받는 노하우를 주고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해외 전시회에 나가서는 기본적인 라인 시트나 오더 시트조차 준비하지 못하고 바이어가 찾아왔을 때 영어 한 마디 못한 채 버름하게 매장만 지키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일단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아 해외에 나간다면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나도 국가대표’라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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