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에서 개최된 패션 관련 전시장에서 한 구두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그는 그 전날에는 서울에서 열린 일본 전시회에 참석했다가 밤늦게 짐을 싸서 부산으로 왔다고 합니다.
방문객이 없어 한산한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제 그만 두고 떡볶이 장사나 해야겠다”며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올해가 3년째인데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몇몇 셀렉트숍에 입점해 있지만 높은 판매 수수료에 재고 회전율도 느려 늘 자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사입’이 일반적이라는 해외 바이어에 기대를 걸고 지난달에는 일본 모 전시회에도 참여해 봤지만, 별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구와 부산 같은 지역 전시회에 ‘공짜’라는 말에 혹시나 하고 참가해 보았지만, 방향성도 바이어도 없이 부스 채우기에 급급한 전시 행사라서 작업할 시간만 낭비했다고 하는군요.
‘인디(Indie) 디자이너’들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최근 셀렉트숍이 수도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인디 브랜드가 각광받으면서 너도나도 앞다퉈 브랜드를 창업하고 있지만, 아직 성숙되지 않은 시장환경 탓에 안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선발 리테일러들은 물론 최근 이 시장에 뛰어든 패션 및 유통기업들도 재고에 대한 위험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위탁제’를 고집하고 있어 디자인 기획에서부터 원부자재 사입, 생산, 재고부담까지 모든 과정이 인디 디자이너 개인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디 디자이너들에게는 보다 유니크 & 차별화된 디자인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들이 ‘상품기획’이란 본질에 투자할 시간과 자금을 메이저들이 박탈하고 있는 것이 요즘 우리 시장의 현주소입니다.
지난주에도 디자이너 양성을 위한 대한민국패션대전이 한국패션협회 주최, 지식경제부 후원으로 열렸습니다. 올해로 30년째를 맞는 이 행사에는 올해도 520명이 응시해 30명이 본선에 올랐습니다.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관심도 많고, 멋진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꿈도 많지만 지금 우리 시장의 환경은 이들이 그 꿈을 펼치기엔 녹록치 않다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지난 30년간 좋은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것에 애정을 가졌다면, 이제는 이들이 제대로 양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 이들이 대한민국의 패션산업을 풍성하게 하고, 나아가 해외시장에서 ‘K 패션’의 가치를 드높이는 플랫폼을 만드는데 정부와 패션 및 유통 기업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요즘 가요계에는 ‘강남 스타일’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습니다. 싸이 이전에도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동방신기, 빅뱅 등 수많은 K팝 가수들이 전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들 K팝 스타들의 뒤에는 SM, YG, JYP와 같은 매니지먼트 기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재능을 가진 인재를 조기에 발굴해 길게는 10년 가까이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양성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우리 패션업계에도 재능이 뛰어난 인재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우리 기업 내부에서 해결하거나, 과거 경험이 많은 경력자만 찾을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높은 인재를 발굴해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변화된 환경을 준비하는 과정일 것 같습니다. 또 내수시장에서 검증된 브랜드에 대해서는 해외 비즈니스에 대한 에이전트 역할도 가능할 것입니다. 무역과 마케팅 & 소싱 능력을 가진 기업과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소비자와 호흡하는 인디 브랜드의 결합은 한국 패션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인기 취재부장
ingi@fi.co.kr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