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접어들어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면서 철새들이 이동을 시작하고 있다. 식물이 열매를 맺고 나서 서서히 시들면 곤충도 사라져 먹이가 급속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부 어른 수컷만 그대로 남아 월동을 하게 된다. 수천 Km를 이동하는 철새들은 방향성이 확실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철새들이 이동하는 힘의 원천이다. 철새들은 이동하기 전에 우선 강한 근육을 만들고 에너지를 축적한다. 1만 Km를 이동하는 도요새는 자기 체중의 2배 정도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힘의 원천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한다. 철새들이 멀리 날 수 있는 것은 함께 날기 때문이라는 것. 철새들은 일정한 모양을 만들어 모여서 하늘을 난다. 함께 날갯짓을 하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상승 기류를 만들어 훨씬 쉽게 날 수 있다. 이렇게 함께 날면 혼자 날 때 보다 70% 이상 멀리 갈 수 있다고 한다. 리더가 명령하는 것도 아니지만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날갯짓을 하고 때로는 자리를 바꿔 밖의 거친 바람을 막기도 하면서 그렇게 멀리 간다.
우리 섬유∙패션 산업도 환경이 바뀌며 이동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산에서 내려온 아웃도어가 스포츠나 캐주얼을 밀쳐내기도 하고, 해외 브랜드들이 몰려와 국내 시장을 포화 상태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장기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 섬유∙패션 업계가 함께 혹한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부 대형 패션 업체들은 아웃도어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하고 또 다른 업체들은 ‘한국형 SPA’ 브랜드를 만들어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월동지를 찾아 나서야 하는 업체들은 협력 업체나 회사 내의 역량을 결집하는 등 우선 강한 근육부터 만들고 에너지를 축적해야 한다. 지금은 15년 전 패션으로 이름을 바꾼 의류 유통이 섬유·패션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에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 섬유 산업도 이름 바꾸기에 나서는 중이다. 원사나 직물은 패션 소재, 염색이나 나염은 패션 컬러, 봉제는 패션 제조로 이미지 업그레이드에 노력하고 있다. 이는 패션과 함께 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미 업종 간의 협력은 시작됐다. 대구섬유마케팅센터가 주축이 된 대구 직물 업계가 수도권의 패션 업체를 찾아 직거래 장터를 열어 소재 공급을 하고 있다. 또 한국섬유소재연구소가 중심이 된 경기 북부 니트 업체들이 코오롱패션머티리얼, 휴비스, 삼일방직, 일신방직 등 원사 업체들과 클러스터를 만든 데 이어 패션 업체들과 MOU를 맺어 새로운 소재 개발에 나서고 있다. 올해 신성통상이 3억원의 R&D 자금을 내놓아 300여 스타일의 니트 원단을 개발, 이를 사용한 의류를 만들어 출시한 것이 좋은 예다. 이 밖에 진주 실크나 익산 한지 직물 등 지역 특성화 소재들도 패션 업계와 연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제 섬유∙패션 산업이 새로운 해외 시장을 찾아 함께 날아야 할 시기가 왔다. 해외 글로벌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중국, 동남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러시아 등 현지에 매장을 오픈하고 소비자를 직접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맞은 제품을 적당한 시기에 공급하기 위한 버티컬 생산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혼자서 어려움을 극복하려 했다면 이제부터는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패션 업체들이 해외 매장을 오픈 하기 전에 현지 시장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상 네트워크는 물론 이미 현지 사정에 밝은 직물 수출 업체들의 경험도 빌려야 한다.
더 멀리 날기 위해 업 스트림부터 다운 스트림까지 국내 모든 섬유∙패션 업계가 함께 날갯짓을 해야 한다. 업종 간의 협력이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미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 간 협력부터 챙겨야 한다. 지금까지의 ‘갑’과 ‘을’의 입장을 버리고 하청이 아닌 진정한 협력 업체로서 동반자 관계를 만들고 새 출발을 한다면 더 멀리 날아 좋은 월동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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