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패션을 미리 선보이는 봄/여름 컬렉션은 새로운 패션 농사의 시작이다. 지난 9월 5일 뉴욕컬렉션을 시작으로 올해도 두 달간의 컬렉션 여정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호기심은 이내 지루함으로 변주된다. 아쉬움을 달래려 맥퀸과 갈리아노의 철(?)지난 패션쇼를 유투브로 복기하면서 문득 엘자 스키아파렐리를 떠올렸다.
이탈리아 출신인 패션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는 1922년 부유한 미국인들을 위한 관광 가이드로 파리에 도착했다. 폴 푸아레 의상실에서 쇼핑 투어를 이끌던 그녀는 충동적으로 이브닝 드레스를 입었는데 그 모습을 본 푸아레가 옷을 선물하면서 직접 디자인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결국 패션 디자이너가 된 그녀는 푸아레로부터 물려받은 풍부한 색감과 직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1931년 넒은 어깨가 특징인 정장을 비롯한 할리우드 스타를 열광시키는 많은 히트작을 내놓으며 이후 수많은 모조품을 양산했다.
하지만 20세기 패션에서 그녀의 가치는 패션과 예술의 만남에 있다. 그녀는 당시 예술 사조인 초현실주의를 이끄는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장인(匠人)들과 ‘창조적 연대’를 모색한 창조자였다. 콕토와 함께 가슴을 움켜쥔 손 모양을 수놓은 재킷을 제작했고, 그녀를 위해 천을 디자인했던 달리와는 유명한 ‘눈물’ 무늬와 ‘머리 위에 거꾸로 얹힌 신발’과 같은 초현실주의 모자를 만들었다. 1938년에 넝마 의상으로 70년대에 유행할 펑크를 미리 선보인 그녀는 합성섬유, 레이온, 심지어 셀로판지 같은 소재로 환상적이고 창조적인 패션을 선보였다. 콕토의 지적처럼 그녀는 괴팍한 재단사였고 멋들어지게 궤도를 이탈하는 패션계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녀의 창조적 재능을 질투한 코코 샤넬은 그녀를 ‘옷 만드는 예술가’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예술가 장인들과의 연대로 축적된 그녀의 창조적 재주는 1938년 ‘서커스 컬렉션’에서 방점을 찍는다. 마술사와 줄타기 곡예사가 등장한 무대에 살아있는 원숭이와 잘 훈련된 개가 걷는 모습이 공개되자 광대와 코끼리, 발 등이 프린트된 옷들이 날개달린 듯 팔렸다. 또한 공중 그네 모양의 목걸이와 곡예사 모양의 단추에서는 위트가 넘쳐났다. 그녀는 패션모델들이 자신의 번호나 이름이 호명되면 관객석 중앙으로 한명씩 행진하던 전통적인 패션쇼를 탈피해 엔터테인먼트와 패션이 성공적으로 결합된 볼거리 많은 패션쇼를 선보였다.
1940년대에 이르러 패션쇼에 음악과 조명이 더해졌지만 욕심 많은 스키아파렐리는 패션쇼의 테마를 정하고 이를 기발한 볼거리로 만든 최초의 디자이너로 뮤지컬과 점성술, 이교도적인 분위기도 테마로 사용했다. 미디어가 그녀를 주목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 덕분에 테마와 안무, 스타일링과 음악은 패션쇼의 의상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장인이라면 창조자들은 그 성과물을 파괴해 전혀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 낸다. 그렇다고 그 파괴가 소모적 파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적 파괴는 창조의 또 다른 얼굴이다. 무엇인가를 창작한다는 것은 실뜨기 놀이와 같다. 누군가 선행해 놓은 바탕 없이는 한발도 진보할 수 없고 자신이 뜬 수는 그 이전에 떠온 수많은 후광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자로 살아남는 사람은 강한 자도 머리가 좋은 자도 아닌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다. 변덕스러운 패션은 빠르게 진보하고 새로운 변화를 갈구한다.
유재부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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