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 56년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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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부 칼럼

2012-09-14 오후 5:06:02

1956년 11월 29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반도호텔 다이너스티룸. 젊은 작곡가 박춘석의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쇼 장에 울려 퍼진다. 원피스 코트 앙상블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한다. 관객들은 숨죽인 채 처음 보는 광경에 시선을 집중한다. 2부에서는 바이올린 선율 속에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그해 최고 여배우상을 수상한 조미령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관객들의 환호 속에 모델들이 나란히 무대에 선다. 사회자가 “오늘의 주인공 디자이너 노라노!”를 외치자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치며 축하 꽃다발을 주인공에게 건넨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 양복이 처음 소개된 것은 1886년 1월이었다. 대한제국법령으로 서양식 황제복, 재상복, 군경제복 착용 기준을 정한 것이다. 외교관과 선교사처럼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고종황제와 대신들이 최초로 양복을 입은 셈. 여성들의 서양 복식 착용은 이보다 늦은 1899년경이다. 구한말 윤치영의 집에 윤고려라는 부인이 외교관 남편을 따라 미국에 다녀오는 길에 양장을 하고 귀국한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다.


8,15 해방 전까지만 해도 양장은 예술가나 연예인 등 소수의 신여성들만이 입었을 뿐 대중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당시 모던걸이라 불리던 신여성이 양장에 양산을 쓰고 거리에 나서면 많은 사람이 앞뒤로 막아서서 구경하는 바람에 이동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국 전쟁으로 유엔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고 구제품이 넘치자 여성들 사이에 양장이 급속히 퍼져 나갔다. 옷감이나 옷이 전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제품이든 밀수품이든 외제 옷을 많이 입을 수밖에 없었다. 1953년 휴전 후 전후 사회가 안정화 모드로 접어들면서 품질은 낮았지만 옷감이 조금씩 시장에 나왔고 여성들의 미의식도 발전하면서 드디어 1956년 한국 최초의 패션쇼가 열리는 배경이 되었다.


1956년은 한국 전쟁의 상처가 아주 가시지 않은 때여서 옷감 품질이 형편없었다. 당시 김일환 상공부장관이 고려모직에 특별히 옷감을 짜도록 지시했고 그 샘플 옷감으로 노라노는 패션쇼 의상을 만들었다. 전문 모델이 없다보니 해프닝도 있었다. 연예인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모델들은 옷을 돋보이게 하기 보다는 자신이 더 예쁘게 보이는데만 신경을 써서 개인 소장 최고급 브로치나 목걸이를 맘대로 착용하는 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의상에 맞지 않는 액세서리를 함부로 착용하는 것을 막는 사람을 따로 둘 정도였다고 한다. 관객들도 옷보다는 미인 구경이 목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여자보다 남자 관객이 더 많았다고 한다. 초기 패션쇼엔 고객 중에서 멋쟁이 여성을 모델로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아 영화감독들이 신인 배우를 발굴하기 위해 패션쇼의 단골손님이 되기도 했다. 만약 패션쇼를 ‘옷만 보여주는 목적’에만 의미를 둔다면 첫 패션쇼 역사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한복 연구가 석주선 여사가 1946년 8월 현재 남산드라마센터 옆에 있었던 국립박물관에서 제1회 의상 전시회를 열었다. 몇 개의 마네킹에 옷을 입히고 나머지는 벽에 압정으로 고정시켜 주로 어린이옷을 전시한 이 의상전은 바자회를 겸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유재부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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