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의 자격
가+
가-
유재부 칼럼

2012-08-31 오후 3:57:35

패션은 ‘만드는 일, 행위 활동’을 의미하는 라틴어 팩토(facto)에서 유래되어 오늘날 유행, 스타일, 트렌드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패션은 옷 뿐 아니라 가구, 공예, 건축, 인테리어, 액세서리, 자동차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굳이 옷 디자이너를 패션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상업성과 예술성이라는 옷의 양면성과 세컨드 스킨이라 불리는 옷을 원시 시대부터 만들었던 인류 최초의 디자이너였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나름 분석해 본다.


20세기 전까지 옷은 남녀노소, 지배와 피지배, 직업적 차이를 만들어 냈다. 위정자들에게 옷만큼 효율적인 지배 도구는 없었다. 옷차림으로 스스로를 높이고 아울러 피 지배계급과의 구분을 만들었다. 또한 의식주의 하나인 옷을 만드는 원단으로 시장을 통제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산업혁명과 코코 샤넬과 같은 일군의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던 옷은 패션이라는 지위를 얻으며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19세기까지 왕족과 귀족을 위해서 옷을 만들던 장인들이 가격이 붙은 상업적인 옷을 만들어 대중에게 팔면서 패션 디자이너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 되었다. 이때부터 유럽 럭셔리 하우스에서 만드는 고가 사치품들은 옷이 아닌 패션이 되었고, 부모 세대가 귀족들과 왕족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선물 받은 유산인 럭셔리는 또 다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여성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며 소위 메이커 병을 만들어 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 들면서 세계화에 따라 다국적 기업에 의해 아프리카 사람이나 유럽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피부색은 다르지만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대중들의 럭셔리에 대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샤넬」을 노골적으로 카피하던 「H&M」의 공세에 칼 라거펠트는 “「H&M」이 패스트 푸드라면 「샤넬」은 레스토랑”이라며 카피를 묵인했다. 이제 「H&M」과 같은 카피형 SPA 브랜드를 전 세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어느새 패션 디자이너들은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고 SPA 브랜드로 태어난 값싼 합성소재 옷들은 검은 먹구름이 되어 패션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오존층을 파괴하는 지구 환경 파괴의 괴물이 되었다.


패션 디자이너는 창조적인 아티스트다. 1년 먼저 소재를 구하고 6개월 전에 패션쇼를 선보이면서 계절과 시대를 앞서서 산다. 환경을 생각하고 인간을 생각한다. 늘 미래를 내다보고 과거 유산에서 지혜를 얻는다. 단지 카피라는 테크닉만으로 따라올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앞으로 10년 내에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로봇과 컴퓨터가 패션 디자이너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는 패션 디자이너의 창조성과 휴먼 감성을 감안하지 않은 SPA식 사고 방식이다. 로봇이나 데이터가 만들어 내는 SPA형 브랜드가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10월에 열리는 서울패션위크는 한정된 예산 때문에 패션쇼 참가 디자이너 수를 제한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로 패션 디자이너의 자격 심사를 한다. 서류를 대폭 줄이고 심사도 정량보다 정성을 늘렸다. 정량 평가는 경력이나 매장 수, 매출액 등 객관적 데이터가 기준이지만 정성 평가는 창조성, 상품성, 해외 시장성 등 주관적인 잣대다. 심사위원 취향에 따라 어떤 이는 성공의 열매를 어떤 이는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 있다. 패션 디자이너의 자격을 가리는 심사가 공정해야 하는 이유다.


흔히 기성세대들은 아이돌 스타들을 안구정화용이라도 말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아이돌의 노래는 너무 빨라지고 리듬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선배들이나 기성세대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그들의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거름도 주었다. 결국 아이돌 스타들은 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한류 바람을 일으켰다.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도 안구정화용 패션쇼와 아이돌(?) 패션 디자이너들을 만나고 싶다. 원로 디자이너들의 짬밥이 인정받아야 할 경력이라면 신진 디자이너들의 가능성 또한 한국 패션의 미래를 향한 유산이다. 이번 ‘GN’ 참가 자격 심사에 선배 디자이너들의 비중이 대폭 늘었다. 선배 디자이너들에게 부탁 드린다.


한국 패션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글로벌 시대정신을 잣대로 자신들과 다른 패션 DNA를 가진 패션 천재들을 가려내길 바란다. 적당히 옷 잘 만드는 어패럴 디자이너나 커스튬 디자이너가 아닌 진짜 영혼을 담은 옷을 만든 패션 앙팡테리블 알렉산덕 맥퀸 같은 천재 디자이너를 한국 패션에서도 만나고 싶다.



유재부 객원 논설위원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메이비원(주) | 대표:황상윤 | 개인정보보호책임자:신경식
사업자등록번호:206-81-18067  | 통신판매업신고:제2016-서울강서-0922호
TEL 02)3446-7188  |  Email : info@fi.co.kr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1길 6 (마곡동 790-8) 메이비원빌딩
Copyright 2001 FashionInsight co,.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