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의 12월은 가장 바쁜 시기다. 1월의 마지막 세일이 있긴 하지만 이때는 사실상 재고 소진을 위한 것이고, 정상적인 겨울 매기의 마지막은 12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2월 장사는 올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12월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패션업체의 내년 사업계획이 이 시기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는 시장 예측이 어려워 내년 사업계획 수립이 예년에 비해 늦어지는 바람에, 그 어느 때보다 12월이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해마다 이맘때는 사람 만나기도 어려워, 1년 중 기자들이 취재하기에 가장 애를 먹는 시기다. 하지만 올 12월에는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하다.
이런 분위기가 연출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장사가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패션업체 관계자들은 세일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예전 같지 않고, 수능 특수도 올해는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 내수 경기 위축으로 패션업체들도 겨울물량을 감축한데다, 해외생산의 불협화음으로 발주한 물량과 스타일이 부러지는 경우도 자주 발생, 물량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겨울 신상품으로 풍성해야 할 매장에는 행사나 이월 상품이 대신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모 볼륨 브랜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점주는, “소극적인 물량정책과 해외생산의 불협화음으로 물량 공급이 순탄치 않다. 예년 같으면 몇십만 장을 생산하던 아이템을 올해는 몇천 장만 생산하는 등 과연 볼륨 브랜드인가를 의심케 하는 경우도 있다”며 “경쟁 브랜드 매장을 보거나 친분 있는 타브랜드 점주 말을 들어보니 이러한 경우가 비단 우리 브랜드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의 인사개편이 이달 중에 이뤄지는 것도 12월이 한가한 이유다. 인사개편이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바이어 들도 처신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내년 봄 정기 MD개편으로 1년 중 가장 바빠야 할 시기인 요즘, 패션업체 관계자들이 손을 놓고 있는 촌극도 연출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바이어가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바이어를 만나도 사실상 업무 얘기는 못하고 있다”며 “인사개편이 완료될 때까지는 업무 마비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취재하다 보면 타업태 종사자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그들은 한결같이 패션업체들의 역동성을 지적하고 때로는 이에 대해 부러움을 표시한다. 실제 이러한 패션시장의 역동성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으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패션시장 성장 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역동성이 최근 눈에 띄게 저하된 것이다.
물론 최근 패션업계에 나타나는 역동성 저하가 단지 일시적인 현상일 뿐 우려할 수준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만의 하나 이러한 현상이 지속돼 자칫 구조적인 문제로 발전된다면 의외로 심각할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경쟁구도가 업종간에서 업태간으로 변모됐고, 소비자들의 구매도 더 큰 가치를 주는 것에 지갑을 여는 선택적 소비로 바뀐 상황을 감안할 때, 자칫 패션이 소비에 있어서 후순위로 밀릴 수도 있다.
역동성의 저하가 우려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느낀 사실 중의 하나가 역동성이 살아 있는 시장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역동성이 저하된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백화점 바이어들이나 패션업체 종사자들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바뀌어서 업무 연속성이 약해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노파심인지 몰라도 두 말이 자꾸 연관되는 느낌이 든다.
박찬승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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