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혁생산공장의 P씨는 12월인데도 할 일이 없다. 겨울작업은 끝난 지 오래고 리오더도 없다.
예전엔 봄작업도 가끔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경마장과 선술집을 오가며 소일한다. 내년 여름까지는 이렇게 보내야 한다.
이 공장의 사장인 K씨는 겨울일을 했던 공임 미수금을 받으러 다니는 것이 일과다. 몇 개 발주업체의 겨울일을 조금 했지만 공임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생산 직원들이 못 받아간 공임을 내놓으라고 연일 졸라대고 여기저기 밀린 미지불금이 적지 않다. 직원이라야 겨우 3명인데 그나마 P씨 외 두 명은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다른 공장으로 가버렸다. 봄/여름 내내 놀다가 가을 들어 겨우 약간의 일을 했던 터라 밀리는 임금을 참지 못한 것이다. 그는 공장문을 닫은 채 바깥을 돌며 전화는 아예 받지 않는다. 돈 달라는 전화 말고는 반가운 전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공장에 가죽 재킷 생산을 의뢰한 프로모션사의 D씨도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생산공장에서 생산을 제때 안 해주는 바람에 큰 손해를 봤다. 15일이면 생산되었을 옷이 두 달이 넘어서야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절성 판매가 강한 가죽 제품의 판매시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유명 브랜드에 납품키로 했던 제품이 납기 크레임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모두 위탁판매로 돌릴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판매는 부진하고 납품 결재도 한없이 늘어진다. 결국 위탁한 생산공장에 공임 결재를 해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고, 실제로 해 줄 자금 여력도 없다.
D씨는 겨울 상품 중 패딩과 다운 제품 수천 장도 모 브랜드사로부터 발주받아 생산했다. 브랜드사의 발주가 늦었으므로 국내생산을 하려고 적당한 공장을 찾았다. 국내 공장은 임금이 다소 비싸도 납기가 정확하고 봉제력이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시간내 생산을 해낼 수 있는 공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물량은 급히 중국에 생산을 의뢰했다. 불안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소량씩 발주된 몇 스타일만 국내생산에 의뢰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중국생산은 납기도 별 문제가 없었고 제품의 하자도 거의 없었다. 국내생산은 모조리 납기를 넘기고 말았다.
국내 생산은 제품에 문제가 생겨 1천여 장의 크레임이 발생했다. 일할 사람이 제대로 없는 국내 공장이 생산은 맡아놓고 작업을 해내지 못한 것이다. 지금 국내 임가공 생산공장의 사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생산공장은 모조리 중국 등으로 빼앗기고 없다. 공임이 비싸서, 생산능력이 안 돼서, 일할 사람이 없어서 등등 이유는 많다. 브랜드사들의 의식엔 아예 중국생산을 생각한다. 일을 받지 못해 그나마 몇 남은 숙련공들도 할 일이 없다.
누구 탓인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국내 고임금을 따라잡기 어렵다. 그래서 브랜드사들이 수지를 맞추기 위해 해외생산에 나서는 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생산공장이 생산가를 낮출 수 없느냐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자 10명 중 8∼9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에서 힘든 봉제 일을 하려는 젊은이는 드물다. 새로 배우는 사람은 없고 숙련공의 나이는 들어가고 공임이 오르는 것을 막기도 어렵다.
방법은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젊은이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외국인 노동자라도 써야 한다. 생산공장의 특성상 외국인 노동자도 5년 이상 장기고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수한 인력을 뽑아 장기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우리 제품을 생산하게 해야 한다.
개발도상국가에서 봉제기술은 고급 기술이므로 얼마든지 우수 인력을 유치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와 정책적으로 봉제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을 우리 산업역군으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계층이 존재한다. 우리 국민이 맡기 싫어하는 일이라면 가능한 여건을 활용해서 누군가에게 그 일을 맡겨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끼칠 부정적인 문제들로 인해 그들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한다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그 문제보다는 우리의 생산기반이 모두 무너지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이제는 우리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중국생산을 국내로 돌릴 수 있다. 중국의 공임이 급속히 오르고 있고 국가간 생산의 번거로움도 적지 않아 가능하면 국내생산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은 우리 공장을 살릴 방법을 지금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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