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 아닌 ‘적자생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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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오전 10:49:41

M&A에 대한 루머가 끊이지 않던 한섬이 결국 SK네트웍스의 품에 안겼다. 이로써 1988년 설립 이후 근 20년간 한국 패션시장을 리드했던 한섬은 SK란 대기업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한섬의 창업자 정재봉 사장은 기업자산에 비해 2배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밸류 세일(Value sale)에 성공했으며, 이후에도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보유한 체 부동산 전문기업을 경영해 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일각에서는 한섬 매각에 대해 ‘왜 우리는 100년 전통의 명품 기업을 만들 수 없는가’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패션산업 현장에 몸담고 있는 상당수 사람들은 기업과 브랜드를 영속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섬 M&A에 앞서 지난달 중순에는 톰보이가 최종 부도 처리됐다. 1977년에 설립된 톰보이 역시 한섬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패션기업으로 평가 받아왔지만, 오너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경영부실이 깊어지면서 결국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한섬에 비해 역사와 외형에서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를 보인 것이다. 이 두 회사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향후 패션시장에서 자주 맞닥뜨리게 될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교차된다. 이미 국내 패션시장은 성숙기에 진입했으며, 이에 따라 M&A를 통한 또 다른 성장을 모색하거나 시장환경 변화에 맞춘 ‘최적의 경쟁력’을 만드는 생존법칙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흔히 패션업은 감성산업이며 오너의 추진력이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에 오너가 발을 빼면 성장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창업기에 더 적합한 말이다. 기업은 창업기가 있으면, 성장기가 있고, 또 성숙기가 있다. 창업의 시대에는 시장을 보는 탁월한 시각과 추진력을 가진 ‘오너의 존재’가 중요하지만 성숙기에 접어 들면서부터는 경영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또한 새로운 성장, 예를 들어 글로벌 마켓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력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한섬을 인수한 SK네트웍스도 그런 배경에서 한섬을 사들인 것으로 판단된다. 대기업의 자본과 경영능력,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함으로써 한섬을 세계적인 패션 전문기업으로 성장시킬 자신감이 있었기에 4000억원 이상의 거금을 투자했을 것이다. 이번 M&A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SK네트웍스가 패션시장 내 영향력 강화 차원에서 단순히 덩치를 키우기 위해 약육강식의 논리로 인수했다는 일부 세간의 시선이 그것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러한 논리로 인수했더라도 이제는 정확한 방향성을 수립하고, 패션기업 특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경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한섬은 물론 국내 패션산업의 경쟁력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패션업계 종사자들의 바램이다. 그것이 전통의 명품기업 한섬을 지속 성장시키는 ‘적자생존의 원리’일 것이다.

정인기 기자
ingi@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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