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생명력은 참으로 끈질기다. 풍부한 먹이와 적당한 환경 속에서 더없는 풍요를 누리며 사는 복 받은 생명이 있는가 하면, 황량한 사막이나 극도로 오염된 폐수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생명체도 있다. 또 코끼리나 고래와 같이 거대한 동물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이 작은 생명체도 무수히 많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하 수백 미터 암석 속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수백 도의 뜨거운 용천수나 영하 수십 도의 만년 빙하에도 생명체는 존재한다고 한다. 어릴 적 시골의 청년들이 개울물에 청산가리라는 독약을 풀어 물고기를 잡곤 했는데, 그때도 바위틈에서 샘솟는 적은 양의 맑은 물에 주둥이를 들이대고 살아 남는 물고기는 있었다. 큰 불로 산야가 초토화 되어도 이듬해 봄이면 새싹은 돋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척박한 환경에 사는 생명체일수록 몸집이 작다는 사실이다. 지구에도 열대우림으로 뒤덮였던 시절에는 공룡과 같이 큰 동물들이 번성했지만, 빙하기 등으로 우림이 사라지면서 몸집이 작은 동물들만 살아 남았다.
지금 우리 패션계는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그 가운데 고가시장은 해외 수입 브랜드로, 저가시장은 중국산 제품으로 채워져 우리 패션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앞으로 ‘디자인력’은 유럽 명품에게, ‘물량전’은 중국 패션 기업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다. 매년 대학에서 배출되는 3만5천여 명에 이르는 패션 디자인 유관 전공자들은 치열한 경쟁을 더욱 격화시킨다. 자연의 현상으로 보면 먹이는 없는데 먹이를 찾는 동물 개체수는 많아지니 자연히 도태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하든지, 척박한 토양에서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몸집을 맞추어야 한다.
1997년 국제구제금융(IMF) 시기 우리 패션계는 대량해고 사태를 맞았다. 이때 해고된 많은 디자이너들은 동대문시장이라는 도매시장에 몰려들어 생존의 길을 모색했다. 그래서 IMF 이후 우리의 동대문시장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때는 갑자기 밀어닥친 위기를 사람들이 기민하게 피해 살 길을 마련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어 모두들 내일(?)만 기다리고 있다. 그 옛날 천수답(비가 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 농사를 짓는 농부가 가뭄에 비올 날만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연구에 따르면 개구리가 활동하기에 가장 적당한 온도는 섭씨 24도 정도라고 한다. 이 온도의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가만히 있는다. 이 물을 서서히 가열해도 개구리는 뛰쳐나오지 않고 결국은 삶아져 죽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조금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개구리는 금방 뛰어 나온다.
지금 우리 패션계의 형국이 개구리의 형국은 아닌지? 이 불황기에 우리 패션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몸집을 작게 하는 것이 한 대안일 수 있다. 즉, 디자이너들이 저마다 개성을 살린 매장을 낸다면 생존이 가능할 것이다. 과거 1980년대의 맞춤전문 매장일 수도 있고 독특한 캐릭터의 전문매장일 수도 있다. 특수한 사람만을 위한 매장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패션의 벤처기업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작은 개인 숍 형태의 패션 기업은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한다면 운영의 묘에 따라 생존이 가능할 것이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현대에 기업의 규모가 사업의 성공 여부로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또 기업을 하면서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작지만 나만의 패션세계를 그려내는 패션 소호(SOHO) 기업으로 디자이너들도 질적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다. 성장하는 신세대는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들에게 거대한 몸집의 패션 기업은 만족스런 제품을 공급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 우리 패션계가 개인 숍 형태의 패션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다양한 패션 르네상스를 구가해 세계 패션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작은 개미가 살아 남는 자연의 섭리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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