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청와대에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면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선진국을 따라가기 힘들지 모르지만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서열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IMF 때는 아시아만의 위기였기 때문에 우리만 정신 차리면 수출을 늘려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나, 지금은 세계 전체가 실물경기 침체로 어려운 만큼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도 했다.
상반되는 두 가지 말이다. 당장의 생존을 위협받는 국내 섬유·패션기업들로서는 오히려 뒤의 언급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부도의 위협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마당에 국가 서열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1년 전만 해도 우리 패션기업들에게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은 일종의 희망사항쯤으로 여겨졌다. 해외 진출 케이스라고 해봐야 중국에 치중돼 있었고, 그나마도 변변한 실적을 거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글로벌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출은 날이 갈수록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자칫 내수 시장을 글로벌 브랜드에게 고스란히 내준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위기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IMF를 겪으면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됐지만 아직 2% 모자라다. 아시아 뿐만이 아닌 전세계에 걸친 위기 상황이 전국민의 돌파 의지를 북돋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국내 시장의 위기를 수습하고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내수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우리의 실력을 키웠지만 시장이 한계에 다다랐다.
정부도 글로벌 패션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기초적인 단계지만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선정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등 정부 예산으로 진행중인 사업도 꽤 된다. 이러한 정책이 언제쯤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민관이 힘을 합친다면 그리 오래걸리지 않을 것이다.
10년 후 패션기업 경영자들의 입에서 “그 때 위기가 세계 패션 시장의 질서를 흔들어 국내 브랜드가 주도권을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술회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