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실 여사와 칼 라거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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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1 오후 4:12:45

드라마 <패션 70’s>이 종영을 향해 가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드라마에서 ‘앙상블’ 부티크의 칩 디자이너이자 아세아복장학원의 원장으로 나오는 장봉실 여사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다. 변덕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소신 있고,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따뜻하다. 여기에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타인의 실력을 인정할 줄 아는 포용력까지, 지금까지 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패션 디자이너의 캐릭터로 볼 때 가장 리얼리티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물론 약간의 사이코성이 있지만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세련된 이미지와 헤어 스타일, 또박또박하고 분명한 말투까지….아마 탤런트 이혜영이기 때문에 가능한 캐릭터가 아닐까 한다. <패션 70’s>의 정성희 작가 역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로 꼽은 장봉실은 <패션 70’s>을 이끌어가는 사실상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드라마에서 디자이너 장봉실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드라마의 장봉실을 보면서 디자이너 지춘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만큼 둘은 닮았다. 장봉실이 지춘희를 카피(?)한 혐의가 짙지만, 어쨌든 지춘희를 옆에서 지켜보고 이를 캐릭터화한 탤런트 이혜영의 연기력과 프로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장봉실은 자신과 함께 오사카 컬렉션에 나갈 신인 디자이너를 뽑는 콘테스트 형태의 패션쇼를 프레스까지 불러 성대하게 연다(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먼저 준희의 화려한 의상으로 패션쇼가 시작된다. 준희의 의상을 본 더미 쪽 모델들은 기가 죽지만 더미는 덤덤하다. 이제 더미의 차례, 연경이 먼저 나가 의상을 선보이고, 장빈도 조금 늦었지만 때마침 도착해서 무대로 올라간다. 더미는 마지막 의상으로 같은 옷이지만 원단이 다른 옷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 장봉실 여사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한다. ‘앙상블’ 부티크로 돌아온 장봉실은 더미를 일언지하에 쫓아낸다. 이유는 앙상블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것. 결국 더미는 방산시장의 동양상회로 돌아가고, 박 사장의 도움으로 ‘동춘’이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다. 비록 ‘앙상블’ 부티크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직접 소비자들을 만나, 그들이 저렴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꿈이 이루어진다. 장봉실은 더미에게 ‘어디 가서든 장봉실에게 배웠다는 말을 하지 말라’며 ‘너가 시장에서 온 사실을 깜박했다’는 재래시장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 “처음 여사님의 옷을 보고는 너무 비싼 가격이 마음에 걸렸고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사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이런 더미의 말에 장봉실 여사는 “불특정 다수를 위해 옷을 만드는 것은 개성도 없고 디자이너의 혼도 없다”며 호통을 친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을 위해, 옷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 옷을 맞춘다는 자신의 고급 맞춤복 철학에 반하는 더미를 자신의 수제자에서 파문한다. 그럼 고급 맞춤복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1858년 찰스 프레드릭 워드에 의해 파리에서는 최초의 고급 맞춤점인 오뜨꾸뛰르가 생겨났다고 한다. 파리의 고급 맞춤복은 폴 포아레와 가브리엘 샤넬, 엘자 스키아파렐리, 비오네 등이 활약한 1910∼1930년대와 디올, 피에르 가르뎅, 이브생 로랑이 활약한 1940∼1950년대까지 귀족과 상류층을 고객으로 번창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성품이라는 의미의 쁘레따뽀르떼라는 고급 기성복이 생겨나면서 오뜨꾸뛰르의 좋았던 시절은 쇠퇴기를 맞게 된다. 물론 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기성복은 있었지만 질도 낮고 가격도 너무 싸 멋쟁이들에게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이렇게 오뜨꾸뛰르 수준의 고급 기성복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자 오뜨꾸뛰르 디자이너들이 쁘레따뽀르떼 컬렉션으로 대거 이동하거나 둘을 병행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는 많은 하우스들이 오뜨꾸뛰르를 제한적으로 판매하거나 전개를 중단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오뜨꾸뛰르 컬렉션 역시 지나친 예술성 추구로 고객을 잃었고, 떠나간 고객들을 잡기 위해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라인을 대거 선보이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중심에 칼 라거펠트라는 천재 디자이너가 있다. 그는 “패션은 파괴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독일 태생의 현실주의자다. “옷은 순간을 반영해야 한다. 너무 빠르거나 늦으면 소용이 없다”며 브랜드 하나도 힘든 요즘, 오뜨꾸뛰르와 쁘레따뽀르떼, 중가 브랜드를 넘나들며 「샤넬」 「펜디」 「라거펠트갤러리」를 전개하고 있다. “패션에 예술혼을 불어넣는 디자이너는 없고 햄버거 같은 맥 패션만 만들어내는 패션계에 환멸을 느낀다”며 상업성이 강한 젊은 디자이너 톰 포드를 비난하면서 패션계를 은퇴한 이브 생 로랑은 어쩌면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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