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생산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성수동이 얼어붙었다.
연이은 중형브랜드들의 부도, 위기설에 대형브랜드들의 물량축소까지 겹쳐 예년 같으면 연장근무까지 해가며 생산에 열중하던 공장들이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30여년간 구두생산에만 매달려온 어느 공장 사장은 지금까지 경험한 중 최악의 불황이라고 토로한다.
기회만 되면 공장문을 닫고 싶다는 푸념들이 성수동을 지배하고 있다. 조만간 성수동에서 구두공장보기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성수동의 이같은 사태는 어쩌면 ‘백년하청(百年下請)’이란 자조적인 표현으로 일관해온 생산업체들이 자초한 일일지도 모른다.
여건이 어떻든 스스로의 자생력을 갖지 못하고 원청업체의 상황에 공장의 운명을 맡겨온 터라 억울한 희생을 당해도 대책이랄 게 없다.
최근 사태를 살펴볼 때,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경영을 잘못해서 위기에 몰리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제아무리 열심히 가죽다발을 들고 땀 흘려도, 판매업체가 부실경영으로 무너지면 그날로 끝이다. 오히려 부도난 판매업체는 재기하더라도 공장은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성수동 구두공장의 대책은 없을까?
무엇이 문제인가?
구두공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소원은 ‘예측 가능한 오더’이다.
이태리의 구두공장은 최소 5∼6개월 분의 생산량을 먼저 확보하고 안정적인 생산에 들어가는데 비해 우리는 2개월 분의 생산량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당연히 생산성이 떨어지고 품질관리가 어려우며 공장경영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못한다. 판매업체들의 발주가 통상 1개월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공장에는 1개월 단위로 발주하는 판매업체들도 이태리공장에는 6개월 전에 발주한다. 국내 구두생산의 경쟁력이 높아질래야 높아질 수가 없다.
올해도 이태리의 미캄(MICAM)이나 독일의 지디에스(GDS)에 많은 구두업체 관계자들이 방문하게 될 것이다. 브랜드수입에서 OEM발주, 디자인 카피 등 다양한 목적으로 구두전시회장을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제품개발력에 대해 수없이 부러워할 것이다.
물론 전시회에 참가한 현지 생산업체들은 대부분 한시즌 앞을 내다보고 개발한 제품이다. 그들은 전시회에서 수주한 물량으로 향후 6개월간의 생산계획을 짜게 될 것이다. 예상보다 많으면 설비, 인력을 늘리고 적으면 감축경영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적어도 국내공장들처럼 ‘다음달 오더가 얼마일까?’라며 초조해할 이유가 없다.
멀쩡하게 잘 돌아가던 공장들이 한순간에 빚쟁이로 전락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3개월에서 7개월에 이르는 어음결제가 그 원흉이다. 원청업체가 고의든 타의든 부도를 내면, 그 빚잔치는 영세한 공장에서 치러진다. 가죽 등 원부자재값에서 노임에 이르는 수십명의 연관업체, 인력들이 공장으로 모여들고 휴지조각이 된 어음을 든 공장 사장은 대책이 없다.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억울하지나 않겠지만 열심히 일하고 받은 어음의 부도로 당하는 일이라 억장이 무너지고 빚이 쌓인다. 그러나 외국의 구두를 수입하면서 판매업체가 어음을 발행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6개월 선행오더에 현금결제, 국내공장엔 꿈같은 일이다.
전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의 구두유통처럼 독특한 시스템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백화점은 부동산 임대업 형태로 매장을 운영하고, 판매업체들은 생산과 판매를 모두 책임진다. 이런 과정에서 공장들이 자신이 운영하는 유통을 가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백화점에 매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막대한 투자를 감당할 수 없고, 좋은 제품을 개발하더라도 납품하는 순간부터 제품의 부가가치는 판매업체에 귀속된다. 일본의 경우처럼 백화점들이 브랜드 입점만이 아니라 ‘직매입’ 위주의 매장을 운영한다면 모를까? 현재로선 성수동의 공장들이 택할 수 있는 판로는 OEM 납품뿐이고 이는 공장경영의 불안정성만 가중시키게 된다.
냉정하게 보면 구두 제조업은 노동집약 산업이면서 절대인력 부족에 따른 과다한 인건비, 영세한 규모, 장기어음으로 인한 유동성 취약 등이 일반화되어 있어 미래가 어둡다.
이태리의 고가제품과 중국의 저가제품 틈에서 경쟁력은 점점 사라지고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불안은 점점 커지는 성수동 구두산업, 대책은 없을까?
자생력을 마련해야 한다
이태리의 미캄이나 독일의 지디에스 같은 세계적 구두박람회에서 성수동의 미래를 찾아볼 수는 없을까? 공장들이 자신의 땀흘린 제품을 내놓고 도소매상들을 불러 모아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구두시장 규모는 약 2조5천억원 내외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제화3사와 살롱화 업체들의 시장규모는 전체 시장의 50%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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