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우리나라 패션계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하나 벌어졌다. 바로 서울방송(SBS)이 서울시와 함께 패션의 대중화·산업화·세계화라는 슬로건을 내건 독특한 컬렉션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제1회 서울국재패션컬렉션(SIFAC, 97 Seoul Internatinal Fashion Collection)은 이어 국내 최초의 국제 컬렉션을 표방하면서 디자이너와 패션 업체에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와 톱 모델 참가라는 미끼(?)로 약 2천만원의 참가비를 요청한 것이다. 물론 용도는 해외 빅 디자이너와 톱 모델 초청 비용이었다.
어쨌든 행사 총책임을 맡았던 SBS의 이남기 편성국장은 사전 기자 회견을 통해 “칼 라거펠트, 존 갈리아노, 도나 카란, 폴 스미스, 이세이 미야케 등의 디자이너와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쉬퍼, 린다 에반젤리스타 등 세계적 모델과 섭외 중”이라고 발표했다. 디자이너와 내셔널 브랜드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여기에 매일 저녁 패션쇼를 녹화해주니 전국구(?)로 뜨고 싶은 브랜드에게는 금상첨화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애초에 섭외중이라던 세계적인 디자이너는 아무도 오지 않았고, 한물간(?) 톱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만이 방한해 거액의 출연료(?)를 챙겨갔다. 결국 행사가 끈난 후 국내 디자이너들과 업체들 사이에서는 ‘속았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국 외국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쇼를 하고 싶었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와 내셔널 브랜드들의 허탈감과 실망감은 극에 달했고 2회 행사부터는 국내 톱 디자이너들이 빠진 2류 패션쇼 행사로 진행되더니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개최시기도 문제였다. 6월(6월23일~28일)에 열린SIFAC은 해외 컬렉션 기간과 너무 차이가 난다는 점이었다. 뉴욕이나 패션 등 유명 해외 컬렉션이 통상 2월과 10월에 열리는데 6월에 가을/겨울 옷을 내놓는다면 컬레션 고유의 의미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월에 이미 쇼를 끝내고 수주까지 마친, 다음 봄/여름 시즌을 준비하는 해외 디자이너들이‘묵은’의상을 들고 패션의 변방인 한국에 올 거라는 발상 자체가 순진했던 셈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세계 패션은 물론 국내 패션도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고, 세계 시장의 트레이딩업 바람은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SIFAC이 열리던 1997년 즈음부터 직진출하기 시작한 럭셔리 브랜드들은 국내에서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며 이제 서울은 세계 럭셔리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소비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유독 패션위크 문화만이 퇴보하는 느낌이다.
내년부터 서울광장에서 ‘한류 스타 패션쇼’를 이틀간 연다. 기존의 서울 컬렉션과 신진디자이너 컬렉션을 묶어 8일간의 ‘패션 서울’ 축제를 연다는 것이 서울산업통상진흥원의 계획이라고 한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서울시의 ‘2007년 서울 패션쇼 세부 소요 예산 내역’에 따르면 패션쇼의 총예산은 15억7500만원으로 이중 모델 출연료가 9억5000만원으로 행사장 사용비(1억5000만원), 운영 진행비(1억5000만원), 연출비(1억2500만원) 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다. 모델 출연료 중에서도 일반 모델료는 1억5000만원 배분된 반면 한류 스타들의 모델료는 무려 8억원에 달한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그럼 한류 스타만 있으면 쇼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봉착하면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예정된 3월까지 디자이너들이 의상 준비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하고 한류 스타들의 스케줄도 미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디자이너와 한류스타도 미정인 상태에서 예산만 미리 확보해 놓고 보다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집고 넘어갈 것이 있다. 컬렉션, 더 자세히 말하면 패션위크는 6개월전에 매년 정해진 기간에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바이어와 기자들에게 선보여 평가를 받은 후 6개월 후 소비자와 만나는 패션 페어라는 점이다. 9등신의 비율도 맞지 않는 한류 연예인들을 앞세운 패션쇼를 열어 일본이나 동남아 관객에게 패션쇼 티켓을 파는 서울시의 관광 사업에 더 이상 패션을 들러리로 세우지 말았으면 한다.
1997년 SIFAC 행사의 폐막식 날 저녁, 시팍(SIFAK)으로 잘못 새겨진 거대한 얼음 조각이 코엑스 화장실에 버려져 녹고 있는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국민의 혈세는 화장실에 버려지는 눈먼 돈이 아니다. 서울시 한류 패션쇼에 대한 재고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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