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패션의 한계는 음란의 경계만큼이나 모호하다. 패션쇼의 비치는 패션인 트렌시러런시(Transparency) 룩 내지 시어(Sheer) 룩으로 불리는 패션을 본지 표지로 사용했다가 몇 번 경고(?)를 받은 전과가 있기에 여전히 그 기준을 단언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누드 사진을 보고 여자가 생각나면 외설이고, 보디 라인이 보이면 예술이라고 한다. 결국은 여성의 보디 라인을 예술적으로 찍은 사진이 누드 사진이니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며 서로 우기는 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신곡을 들고 나온 가수 엄정화의 섹시한 무대 의상이 화제다. 사건은 지난 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9일 개국한 모 엔터테인먼트 채널이 개국 특집 쇼가 다수의 관객을 동원한 가운데 서울 잠실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3시간에 걸쳐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최근 공중파 음악 방송이 돌발(?) 사고로 인해 지연방송을 하는 것이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여튼 문제는 특집 쇼 오프닝을 장식한 엄정화의 무대에서 발생했다.
엄정화는 자신의 히트곡 ‘초대’를 부르며 무대에 처음 등장할 때 옆이 깊게 트인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남자 무용수들과 그녀 특유의 섹시한 안무로 춤을 추며 노래할 때만 해도 국내 쇼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섹시 연출 수준이었다. 그러나 엄정화의 신곡 ‘컴투미(Cum2Me)’ 무대로 바뀌면서 관객들은 물론 생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깜짝 놀라게 된다. 드레스를 벗어 던진 그녀는 마치 마돈나의 란제리 패션을 연상시키는 투피스 의상에 검은 망사 보디 스타킹을 받쳐입은 파격적인 스타일로 변신한 것. 여기에 팬티를 방불케 하는 짧은 반바지 차림의 남성 백댄서들 역시 이러한 엄정화의 변화에 호흡을 맞추듯 노래 중반에 한 댄서가 상의를 벗어 반라의 몸으로 춤을 추는 무대를 연출했다.
결국 방송 후 인터넷에서는 이날 엄정화의 무대를 두고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논쟁이 벌어졌다. ‘너무 심했다’며 무대의 선정성을 비난하는 글부터 ‘진정 프로다웠다’는 옹호론까지 거의 여론은 용호상박이었다.
흔히 패션의 속성은 바로 대중 속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히틀러가 독일 국민을 자극한 것도 그가 TV와 영화를 통해 보여준 군복 스타일의 강렬한 패션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미 대통령 선거에서 라디오 연설 방송에서 우세하던 닉슨이 캐네디에게 고배를 마신 것은 바로 TV를 통해 보여준 싱글 수트를 입은 캐네디의 젊은 이미지 때문이었다. 스탈린이나 카스트로처럼 독재자들이 수염을 깎지 않는 이유도 이미지 정치인 선거를 안하기 때문이다.
다시 엄정화 사태(?)로 돌아가 보자. 이번에 선보인 엄정화의 망사 패션 역시 80년대 마돈나에 비하면 그리 야한 정도도 아니다. 더군다나 요즘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더 야한 동영상들도 널려있다. 즉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위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안다는 이야기다.
물론 청소년이 많이 모인 공연장에서 과연 그렇게 야하게까지 무대를 연출해야 했느냐는 원인론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단지 결과만 보고 난리를 치는 것은 사회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패션과 엔터테인먼트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영화 의상이 그렇고 무대 의상이 그렇다. 결국은 그것이 실제로 입을 옷이냐 아니면 극의 특수한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수단인가의 문제로 귀결이 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오는 장면마다 옷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옷은 극 전개에 자연스럽게 묻혀가기 때문이다. 엄정화의 공연도 마찬가지다. 신곡을 잘 표현하기 위한 전속 디자이너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내 생각에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는 디자이너의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너무 극단적인 이중적인 잣대는 오히려 패션 문화를 위축시킬 수 있다. 80년대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마돈나 룩은 여전히 80년대 패션의 파격으로 남아 있지만 세월이 지나 지금은 란제리 룩으로 자연스럽게 패션에 도입되고 있다. ‘페티시’라는 다소 음란한 잣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80년대에 보여준 마돈나의 섹시룩이 2000년대 버전으로 진화해 나타난 하나의 문화 충격(?)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이 조차도 10년 뒤에는 한 물 간 무대 패션으로 퇴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늘 새로움에 대한 갈구다. 그래서 패션은 단지 어패럴의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다. 기성 세대와 다른 자신만의 젊음을 표출하며 군부 독재에 심정적으로 반대했던 6,70년대 젊은이들의 미니 스커트와 장발은 자와 바리깡으로 탄압할 정도로 불경스러운 패션이었지만 지금은 복고풍의 전형이 되지 않았는가.
뒷담화지만 방송 직후 모 케이블 TV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그녀의 무대를 동영상으로 보
유재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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