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일던 캐주얼 시장 위기론이 거세지고 있다. 연간 1천억원이 넘는 매출을 자랑하던 브랜드들이 하나 둘 무너져 내리면서 지난 5년간 패션시장을 주도했던 캐주얼 브랜드들에 일대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 봄 들어서는 상위 브랜드와 하위 브랜드의 매출 격차가 더 심하게 벌어져 5~6개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런칭 2년만에 연간 1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브랜드들도 있고, 신규브랜드들도 런칭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캐주얼 시장의 위험 요소와 기회 요소, 그 현실을 알아봤다.
패션기업 A사는 지난 1990년대 후반 이지캐주얼 시장이 확대될 것을 예상하고 「B」브랜드를 출시했다. 때마침 IMF의 영향으로 주머니가 얇아진 젊은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매출도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B」 브랜드는 외형을 더 키우겠다는 생각에 대리점주들에게 매장 면적을 넓히도록 종용했다.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대한 덕에 대도시 주요상권의 점포는 평균 40~50평이 넘는 대형 매장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매출이 늘어나니 점주와 브랜드 모두 좋아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얼마가지 못했다.
2003년 위기가 닥쳤다. 캐주얼 시장에 감성 열풍이 불면서 이지캐주얼이 꺾이기 시작했다. 매출이 떨어졌지만 경기가 나빠 그러려니 했다.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성캐주얼은 시장을 뒤흔들었다. 아차 싶어 감성캐주얼을 뒤쫓아봤지만 감성 캐주얼도 불과 2~3시즌 만에 막을 내리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브랜드들이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뒤늦게 브랜드 아이덴터티를 살리겠다며 마케팅을 해보지만 이미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한 후였다.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점주들도 높아진 임대료에 허덕이다 결국 브랜드를 포기하고 매장을 다시 2개로 나누거나 잘되는 브랜드로 옮겼다.
경영진은 사업본부장을 경질했다. 새로온 본부장이라고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본부장이 바뀌면서 조직이 와해됐다. 100여명에 달하는 직원 중에 2년 이상 근속자가 30%도 안된다. 2006년 캐주얼 시장의 자화상이다.
무리한 외형 확대가 화 자초
“고속 성장은 일종의 마약과 같다. 확대하고 키우는 데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크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뒤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이러다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리한 방법을 써서라도 지난해에 비해 실적을 높이려고 했다” 얼마전 사임한 어느 캐주얼브랜드 본부장의 말이다.
이지캐주얼 시장 성장기에 태동했던 브랜드들이 대부분 이 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다. 고도 성장기의 후유증으로 앓고 있는 성장증후군인 것이다.
양적 성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질적 성장으로 거듭나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캐주얼 시장의 패러다임은 양적 성장에 맞춰져 있다. ‘얼마를 팔았나, 얼마나 신장했냐’가 브랜드의 위상을 가늠하는 척도다. 시장의 눈이 브랜드들을 성장에 집착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또 시장이 이끌어준 성장을 자신의 실력이 탁월한 것으로 오해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소홀히 했다.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다 보니 기업 체질이 크는 데만 맞춰져 있고 유지하고 보수하는 문제는 뒷전이었다. 인력 구조도 성장에만 맞춰져 있다. 영업·마케팅부서 같은 공격수는 대접을 받지만 관리와 재무부서 같은 수비수는 그늘에 가려져있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기업의 체질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으면 문제가 된다. 성장시대에는 영토를 넓히는 선봉장형 리더가 필요했다. 구성원들의 목표도 우리 브랜드의 영토를 넓히는 데 있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달라진 마당에 넓어진 땅덩어리는 오히려 움직임만 둔하게 할 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권성재 더휴컴퍼니 사장은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결국 이익을 내기 위한 것이다. 규모를 키우는 것도 이익을 내는 한 가지 방편일 뿐이다. 성장 시대에는 규모를 키워 이익을 내는 게 맞겠지만 성숙기에는 유지하고 보수하는 게 더 중요한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에 목마르다
현재 캐주얼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폴햄」과 「애스크」. 두 브랜드 모두 런칭 2년만에 1천억원 대의 매출을 올리는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신선한 브랜드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상품과 매장, 광고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박재홍 에이션패션 사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폴햄」의 가치는 디렉션
김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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