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노멀 시대의 Abnormal
- 성장패션기업
얼어붙은 세계 패션산업의 전반적인 침체 기조와는 달리 글로벌 SPA 패션기업과 일본 라이프스타일 편집 패션기업의 약진은 거침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패션산업의 핵심 성장 DNA로 자주 거론했던 콘셉, 브랜드, 제품 등의 물적 속성으로 이들의 성장동력을 설명하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왜 그런 것일까?
뉴노멀(New Normal)로 함축되는 현대 패션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는 성장의 정체나 소비의 양극화 등 개괄적인 대표 속성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함께 맞물려 돌아가던 특정 고객, 제품, 브랜드, 유통의 개별 속성들의 고리가 느슨해지면서 마치 하나의 프로파일처럼 정리(定理)적 논리 지배 구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세상에는 패션산업만의 배타적 고유 생태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패션산업의 핵심이라 할 패션 자체에 대한 정의도 무의미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뉴노멀 패션산업 시대의 핵심 함의는 패션산업 가치사슬의 성장의 크기나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새로운 조합과 융합이라는 생태계 속성의 변화이다. 제시된 표에서 확인되는 해외 유수 패션기업들의 면면을 보라. 그 어느 기업도 종래의 고전적인 패션산업의 개별 속성에 그 성장을 기댄 경우가 없다.
이제는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미 변화한 패션산업 생태계의 빠른 진화 과정에서 우리는 여전히 전통적 속성과 고착된 내수지향적 경쟁논리에만 기대며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고 있다. 이러한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갇혀 새로운 패션산업의 진화 흐름에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 새로운 패션산업 생태계의 성장논리
새로운 변화에서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보태는 것’에만 눈이 멀어 ‘버리는 것’을 놓치는 것이다. 우리 패션산업의 이슈만 하더라도 온통 무엇을 덧붙일 것인가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세상의 동의를 얻고 있는 것은 ‘No 콘셉, No 브랜드’ 등 부분적 제한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한 명제들이 아닌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글로벌 SPA의 경쟁 속성이다. 기존 패션산업의 복잡한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망 관리)을 과감하게 압축함으로써 획득된 글로벌 SPA의 경쟁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패션시장 전체 성장의 주요 축이 되고 있다.
모든 소비 산업의 최고 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고객의 가치이다. 실제 가치와는 무관한 과정의 복잡함이나 체감되지 않는 패션 전문가들만의 제한적인 가치가 더 이상 고객의 가치를 옭아 맬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 세계 패션산업의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단순하고 명료한 핵심가치만을 남기는 ‘고객지향적 버림’이다.
◇ 성장 DNA ? 파도타기(Wave Surfing)
경제학계의 재미있는 금언은 절대로 미래를 예상하거나 예측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대 경제 사회의 메커니즘은 너무 많은 변수들의 돌출과 개입으로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우리 패션산업의 경우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루 하루의 날씨, 경제 이슈는 물론 소소한 정치인의 돌출 발언만으로도 시장의 반등이 나타나는 그야말로 예측 불가의 연속이다.
그렇다. 이제 우리 패션산업의 변화 등락을 이해하려면 기후의 속성에 대한 이해보다는 날씨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 우리 패션 기업의 경영은 대양의 범선을 운전하는 역량만큼이나 파도를 읽는 서퍼의 역량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표에서 예시된 글로벌 성장 패션기업들의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패션산업의 변화하는 파도를 읽는 뛰어난 역량을 가졌다는 것이다. 패션 소비 산업의 서핑 경영에 가장 최척화된 시스템과 비즈니스 모델이 이들의 성장을 견인한 핵심이 되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 성장 DNA ? 일관된 고유성 (Consistency of fit)
작용과 반작용의 자연 법칙처럼 때로는 패션산업의 경영에서도 하나의 뚜렷한 전략은 동시에 그 정반대의 카운터 전략이 요구된다. 브랜드가 사라진 무인(無印)상품의 등장과 강조된 차별적 콘셉이 사라진 스트리트 콘셉의 확장에서 역설적으로 더욱 고유성과 개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차별적 개성과 변별적 자질이 예전과 같은 제품 이미지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수의 한국 패션기업이 최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콘셉이 패션산업의 대세임을 직감하면서도 여전히 난감함을 표현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표에서 예시된 글로벌 SPA 패션기업과 일본 라이프스타일 편집 패션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차별적 DNA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지금 우리 패션기업들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품스타일 중심의 패션브랜드 경영전략의 한계를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패션 제품 차원에서 가장 몰개성적인 생활 패션 아이템으로 구성된 기업이 가장 차별화된 패션기업으로 회자되고 있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이들 글로벌 SPA 패션기업이나 일본 라이프스타일 편집 패션기업들이 고객들에게 강하게 어필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들만의 개성, 즉 일관된 고유성(Consistency of fit)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현호 MPI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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