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 부르시면 “이젠 못간다”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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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 무분별한 유통망 확장에 효율 바닥…온라인 채널 선호

2016-02-12 오후 6:53:57


유통업체 ‘직매입 확대’ 등 근본적 구조 개혁 절실





빅3로 불리는 대형 유통사들의 무분별한 유통망 확장으로 패션 기업들이 점차 병들고 있다. 대형 유통사들은 백화점뿐만 아니라, 아웃렛, 복합쇼핑몰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전국 곳곳의 지방 중소도시까지 진출해 전국을 거미줄처럼 유통망을 형성해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패션 기업들은 유통 대기업인 ‘갑’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다시피 끌려다니다 필요 이상으로 매장을 오픈했고, 이는 결국 나눠먹기식 매출 분산과 비효율 매장 양산으로 이어졌다. 더욱이 최근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매장당매출과 이익이 바닥을 찍고 있다.

결과적으로 패션 기업들은 효율매장은 갈수록 줄어들고, 급기야 전체 브랜드 운영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되자 비효율 매장을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대형 유통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에 대형 유통사들은 ‘전점 철수’라는 초강수 대책을 제시하면서 비효율 매장 운영을 지속시키고 있지만 패션 기업들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회사의 존폐까지 염려되는 수준에 다다르자 ‘갑의 협박’도 받아들이지 않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패션 기업들은 대형 유통사의 매장 운영만으로는 향후 비전이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끌려 다닐 수 없다는 내부 판단을 내리고, 대형 유통사에 매장 철수를 제시하거나, 아예 브랜드를 접겠다는 의견까지 통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패션 대기업 LF는 최근 백화점과 아웃렛 중심의 여성복 브랜드 ‘질바이질스튜어트’를 중단하고, 온라인 브랜드로 전환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과거에도 LF는 백화점 중심 여성복 브랜드 ‘모그’를 중단하고, 온라인 채널로 전환한 선례가 있다.

뿐만 아니라 대형 유통사들의 입점 제의를 거절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요즘 트렌드를 주도하는 동대문 소싱 위주의 스트리트 브랜드와 다양한 아이템을 스피드있게 구성해 인기를 얻고 있는 편집숍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대형 유통사들의 입점 제의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리트 브랜드 A사 대표는 “과거 L백화점의 입점 제의를 받았지만 수익 구조가 나지 않아 입점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수차례 입점을 제시해 결국 일반적인 수준의 수수료보다 대폭 낮춰주는 조건으로 입점하게 됐다.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그 이후 줄곧 비효율 지점과 관리가 되지 않는 지방점 입점까지 제시해 곤욕을 지금까지 치르고 있다. 이미 입점한 매장까지 빼고 싶은 심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이젠 대형 유통사들이 입점을 제시해도 반가워하지 않고,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기존에 영업 중인 매장을 볼모로 비효율 매장 추가 출점을 강요하는 경우 브랜드 전개 중단까지 결정할 정도로 브랜드들이 강경 자세로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한 브랜드 관계자는 “과거 생산자(메이커) 중심 시기에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라 브랜드, 유통사 모두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공급과잉에 소비자 중심 시기이고,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효율 운영이 아니면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결국 존폐 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하다보니 대형 유통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형 유통사들의 무분별한 유통망 확장으로 입점 업체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왼쪽부터)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이천점,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



◇ 부동산 임대업이 아닌 근본적인 혁신 필요

패션 기업들은 대형 유통사들의 운영 정책이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형 유통사들은 지금까지 입점 수수료를 지속적으로 올리는 방법으로 성장을 추구해 왔다. 패션 기업들의 원가와 판관비는 하루가 다르게 인상되고, 가격경쟁은 치열해졌으며, 유통 채널 다각화로 투자비는 계속 늘어났다. 따라서 대형 유통사들은 패션 기업들의 상황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이에 맞는 입점 수수료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 의견이다.

또 대형 유통사 일변도의 정책이 아닌 입점 업체들과 공동으로 향후 브랜드와 매장 운영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부 브랜드의 경우지만 입점 수수료를 20% 안팎으로 조정하고 브랜드가 원하는 인테리어 매뉴얼이 반영되는 것을 통해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대형 유통사 관계자는 “대형 유통사 내부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다. 하지만 전문 경영인 체제 하에 임기가 정해진 구조 속에서는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수 없다. 한해 한해 성장하지 않으면 자리가 위태로운 CEO가 결국 가장 손쉬운 수수료를 올리는 방법과 기존 정책 일변도를 펼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꼬집어 말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판매수수료 방식이 아닌, 유통업체가 직매입하고 재고를 책임지는 근본적인 혁신을 단행해야 유통업체와 브랜드 모두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성호 기자
ksh@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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