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 소비자가 갈망하는 패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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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①

2015-11-20 오후 6:21:05

분카야자카텐의 창업자 요시타로 하세가와



올초 1월 15일 일본 패션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콘텐츠 하나가 사라졌다. 바로 80~90년대 전세계가 하라주쿠 스타일이라 부르던 일본 젊은이들의 스타일이 태동한 그 곳 우라하라(裏原宿)를 개척하고 대표하던 분카야자카텐(文化屋雜貨店)이 문을 닫았다.


1974년 시부야의 뒷길에서 처음 시작해 1989년 지금의 하라주쿠 이면에 자리잡은 후 ‘우라하라’라는 일본 패션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점에, 중요한 장소의 주역을 담당했던 분카야자카텐은 올해 만 67세의 요시타로 하세가와(義太郞 長谷川) 씨가 기발하면서 키치하고 때로는 낯선 세계 각국의 패션 소품들과 생활도구들을 40년간 일본의 청년세대에게 소개하면서 일본 패션사에 독보적인 개성을 존중하는 라이프스타일 시대의 문을 연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출장을 다니면서 백화점이나 대형 플래그십숍처럼 번듯한 매장에만 익숙해진 눈으로는 하라주쿠의 한 켠에서 초라하고 짜임새 없어 보이는 매장 모습이 별거 없다고 느꼈을 지 모르지만 분카야자카텐은 40년 세월 동안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상품들을 공급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하라주쿠 키즈들의 스타일을 이야기 할 때 늘 거론된 주요 콘텐츠였다.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들이나 크리에이터들이 오랜 시간 교감하면서 상품을 제공하기도 하고 때론 충실한 구매자로서 분카야자카텐의 팬이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영국의 폴 스미스는 80년대 이후 분카야자카텐의 충실하고 열정적인 고객이었고 지난해에는 분카야자카텐 40주년 기념 상품을 콜래보레이션 하여 동시에 발매할 정도로 분카야자카텐의 위상은 패션계에서 상상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세가와 씨가 40년의 세월을 정리하면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 중에 아주 중요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유명 미술대학인 무사시노 미술대학(武野美術大?)에서 상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하세가와 씨는 1970년대 당시를 ‘백화점을 가도 팔리는 물건만 있었고 나 자신만을 위한 상품을 발견할 수 없었다’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자신과 같은 젊은이가 분카야자카텐 같은 시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왜 40년 전 일본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건 바로 한국의 소비자들도 ‘늘 팔기 위한 상품 밖에 없는’ 우리 패션 시장을 외면한 지 오래 되었지만, 40년 전 하세가와 씨가 고민한 것처럼 생각하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반성하며 우리 패션 산업계 내부의 담론으로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패션산업은 다들 아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와 함께 출발한 최초의 생산활동이다. 성경 속의 아담과 이브가 이성으로서 눈을 뜨게 되는 사건 이후 소위 세컨드 스킨이란 인체를 보호하는 것에서 출발해 인류 생존을 위한 보호복에서부터 의식복, 전제 봉건제가 수립된 이후엔 신분을 결정하는 차별 복식으로서, 시민사회가 출범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는 보다 더 다양한 TPO에 의한 패션의 구분이 일어났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패션 산업은 이렇듯 인류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하고 다양화 됐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은 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에서 블랑슈 뒤부아가 갈구했던 욕망도 ‘에르메스’의 백으로 상징되었던 것처럼 패션은 두근거림을 제공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설렘의 욕망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폐업 전의 분카야자카텐의 모습



◇ 패션은 언제나 두근거리고 설레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의 패션을 한번 돌아보자. 무엇이 우리를 두근거리게 하거나 차이를 돋보이게 하거나 설레게 하고 있는지. 단지 물질적 가치에 의한 다툼만 남아있는 것이 현재 우리 패션산업의 모습이 아닐까?


다시 돌아가 하세가와 씨가 창업한 1974년 무렵의 일본 패션산업을 보자. 전후 최대의 경제부흥기를 맞이한 당시 일본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모든 것을 내맡긴 나라처럼 보였다. ‘다이에(Daiei)’ 등에 의해 보급된 미국형 유통인 GMS가 일본인들의 생활을 변화시키면서 물밀듯이 들어온 서양식 사고와 상품들 앞에서 일본의 소비자들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진다.


시대상에 따라 당시 일본 패션시장의 룰 메이커인 소위 큰손 기업(大手企業)들이 서양복식을 여과 없이 소개하면서 일본 시장 구성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TPO 만능의 포멀 시장으로 몰고 갔다.


이러한 획일적 시대상에 반발한 하세가와 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젊은층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일본 패션시장의 지배 질서인 TPO에 반하는 다양한 생활상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언더그라운드 문화처럼 나타나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채택하는 테이스트 믹스(Taste Mix) 단계로 발전하면서 일본 패션 사회가 세계성을 향하여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시기에 일본의 패션시장은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형을 채택한 기업들에 의해 다양함과 더불어 빠른 확대가 일어나는데 대표적인 기업이 우리에게 ‘애프터눈 티’로 잘 알려진 사자비 리그일 것이다.
1970년대 초 스즈키 리쿠조 사자비 그룹 창업자는 당시만 해도 일본 내에서 생소했던 유럽의 사용하던 가구의 수입 판매를 시작했다. 누구나 쉽게 손이 가는 적절한 가격대로 지금까지의 검소하고 절약이 습관이 되었던 전후 일본의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의 생활이 조금 즐거워질 수 있을 것 같은 새롭고 재미있고 좋은 질의 생활품들은 새로운 가치관으로 당시 많은 일본 소비자들에게 받아 들여졌다.


철저하게 생활자의 시점에서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고 신나면서 재미있는 또 하나의 근린 장소를 제공하는 사자비의 매장 정책은 당시에 획기적으로 받아 들여졌다. 사자비 리그 그룹이 지금까지도 소중히 여기고 있는 회사의 DNA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자비 그룹이 2013년 론칭한 쌀을 근간으로 하는 라이프스토어 ‘아코메야’ 긴자점. 사자비 그룹은 늘 소비자들뿐 아니라 자신들 모두가 ‘It 's a beautiful day’라고 느끼기 위하여 항상 반 걸음 앞서서 제안 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세상이 두근 두근하는 것에 대한 도전을 기업의 미션으로 삼고 있다.



◇ 일본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효시 사자비 리그
1981년에는 이제까지 일본에는 없었던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애프터눈 티’를 론칭한다. 영국에서 차를 마실 때 같이 즐겨먹던 스콘(Scone)이나 주전자로 제공하는 블랙티 서비스를 일본에 처음 소개한 것.


지금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생활 잡화와 F&B를 복합으로 전개하면서 처음 보는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의식주를 한 공간에서 동시에 제안했다. 이러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일본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금은 일본 전역으로 확장돼 나간 근린형 라이프 스타일 제안 브랜드의 기초를 선보였다.


이후 ‘아그네스비’ ‘스타벅스’를 비롯해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의 전도사인 ‘론 허만’ 같은 셀렉트 스토어나 덴마크의 디자인 능력을 세계에 과시한 ‘플라잉 타이거 코펜하겐’으로 대표되는 항상 동시대의 매력적인 해외 브랜드를 일본 시장에 소개, 침투시켜 가는 한편 ‘아갓트’와 ‘아나이’ ‘에스트네이션’ 등 기존의 로컬 비즈니스 모델을 전개하면서 로컬과 글로벌의 균형을 잘 잡아 나가고 있다.


지금도 사자비 리그 그룹은 크리에이티브를 바탕으로 하는 리테일 기업으로 정형화된 의식주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고, 기대하게 만들고 또 설렘을 소비자들에게 주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김묘환 CM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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