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서울 계동에 청춘의 풋내음이 퍼지고 있다.
옛날 방식으로 짜낸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득한 계동 골목에는 엄마의 손맛을 닮은 식당, 낡디 낡은 다리미로 능수능란한 다림질을 선보이는 세탁소, 그리고 100년 넘은 한옥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였다.
이런 계동에 최근 옛향수를 그리며 찾아든 젊은 아티스트들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며 젊은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올 봄, 새로워진 계동길을 따라 걸으며 감성을 충전해보자.
서울 종로구 계동길은 현대사옥에서 중앙고등학교에 이르는 좁다란 골목이다. 중앙고등학교 왼쪽 길로 넘어가면 삼청동으로, 오른쪽 길은 창덕궁으로 이어진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들이 모여있다는 이유로 삼청동과 함께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아직까지는 한적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유지하고 있다.
대를 이어 사는 토박이들이 많은 이곳에는 최근 공방이나 상업용 매장을 운영하려는 젊은이들이 유입되며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계동의 새 역사를 그리는 아티스트들
임동욱 「미크」 디자이너는 지난해 삼청동 작업실을 매장으로 바꾸고 계동에 새로운 아지트를 만들었다. 삼청동이 상업화되며 사람들이 넘쳐나자 고요한 계동으로 넘어온 것이다. 조용하게 작업에 집중할수도 있어 한결 편하다는 평이다. 삼청동보다 훨씬 저렴한 임대료도 계동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주얼리를 만드는 김진주, 이경임 디자이너도 옛스러운 분위기에 반해 작업실 ‘투워크벤치’를 열었다. 영국 런던에서 공부한 김 디자이너와, 일본 도쿄에서 유학한 이 디자이너는 계동에서 세계적인 감각을 전통 속에 녹여내고 있다.
성수동에서 구두공장을 운영하는 유홍식씨는 오랜 꿈을 펼치기 위한 장소로 계동을 선택했다. 「르꼬르도니에」라는 수제화 브랜드를 론칭하고 계동에 작업실 겸 매장을 열었다. 아직 문을 연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50년 경력이 빚어낸 뛰어난 품질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외국인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밖에 ‘소사이어트 오브 골든J’, ‘메종드이네스’, ‘고래가 고래에게’, ‘낮잠’, 『OC스튜디오』 『램』 등도 자신만의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공간이다.
◇맛도 좋고 멋도 있는 먹거리
맛집은 계동 산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계동의 식당들은 많아야 7~10개 정도의 테이블이 들어갈 정도로 작은 규모지만 그 안에 맛과 멋이 가득한 것이 특징이다.
‘계동피자’는 ‘이태리면사무소’의 명성을 잇는 이탈리아 요리 전문 레스토랑. 까르보나라와 고르존골라가 인기 메뉴다.
스테이크 전문점 ‘2046팬스테이크’에서 식사를 하려면 30분에서 1시간은 줄을 설 각오를 해야한다.
매서운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날씨에도 ‘2046팬스테이크’의 작은 문앞에는 긴 행렬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참으면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로 위안을 받게 될 것이다.
◇추억을 되새겨주는 장소들
한옥집 사이사이에는 어린시절 추억을 상기시키는 상점들이 있다. 옛 방식 그대로 기름을 짜는 ‘대구 참기름집’이나 엄마 손에 이끌려 전과를 사던 학교 앞 문구점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당’처럼 말이다.
빨간 벽돌이 멋스러운 ‘최소아과의원’, ‘계동교회’, 20세기 건축양식을 간직한 ‘중앙고등학교’도 빼놓지 않고 봐야할 계동의 랜드마크다.
투워크벤치

지난해 9월 오픈한 ‘투워크벤치’는 영국과 일본에서 유학하고 금속 디자인 박사 과정을 거친 김진주, 이경임 두 디자이너의 작업실이다. 이들은 금속, 유리, 칠보 주얼리 등을 제작하고 판매한다. 또 일반인을 대상으로 은반지, 비즈 주얼리, 칠보 액세서리 만들기 등 강습을 진행한다. 두 명 모두 영어와 일본어가 가능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가능하다. 토요일에는 어린이 체험 교실에서 엄마와 커플 아이템을 만드는 강의도 열린다.
『OC 스튜디오』

오선옥 디자이너의 작업실 겸 쇼룸이자 그가 운영하는 셀렉트숍.
지난해 11월 계동에 둥지를 튼 『OC 스튜디오』는 깔끔한 화이트 컬러가 돋보이는 외관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실내까지 그의 손길이 닿아 애정이 묻어난다. 오선옥 디자이너의 브랜드 「원크레디티브」외에 「세컨드호텔」 「비」 등 6개 브랜드를 사입해 알차게 꾸몄다.
미크

‘미크’는 버튼 커버를 메인 아이템으로 한 디자이너 브랜드 숍이다. 버튼 커버는 셔츠, 코트 등 단추에 덮어 쓰는 장신구로 노 타이 남성들을 위한 액세서리로 출발했다.
임동욱 디자이너는 지난해 8월 계동에 둥지를 틀고 이어 삼청동 매장도 리뉴얼 오픈해 두 곳을 동시에 오가며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모색

‘모색’은 가죽 가방을 만드는 반선지 디자이너의 쇼룸이다.
벽면에 ‘디자인을 통한 옛것과 오늘을 잇는 우리의 문화적 요소가 가미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모색’이라는 글귀가 나비 모양으로 형상화 돼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물관 문화 상품 MD 경력자인 반 대표는 ‘모색’을 문화를 담는 디자인 아트 갤러리로 꾸몄다. 이미 단골 손님이 된 외국인 고객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램』

신진 디자이너 셀렉트숍 『램』은 아트적 영감이 샘솟는 곳이다. 옷, 액세서리, 가방, 슈즈 등 30여 개 디자이너 브랜드가 입점한 『램』은 셀렉트숍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2002년부터 시작해 지금은 국내 패션계 신인 디자이너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
건너편 ‘램 아틀리에’는 『램』의 작업실이다. 작업실에서는 정영순 장인이 직접 베틀로 직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재 수직기에 실을 걸어 직접 원단을 만들고 제품화한다. 깊은 울림이 들리는 듯한 ‘램 아틀리에’에서는 슬로 패션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다.
고래가 고래에게&낮잠

‘낮잠’은 좋은 나무로 가구와 소품을 만드는 디자인 회사의 쇼룸이다. 파란색 지붕의 한옥집을 그대로 개조해 마치 ‘고향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구를 만들고 남은 나무 자투리로는 한정판으로 소품을 만든다. 조각의 우연적인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남김없이 수작업한다. 바로 맞은편에는 스테이셔너리 디자이너 브랜드숍 ‘고래가 고래에게’가 있다. 오픈이 유동적이라 방문 전에 미리 홈페이지 공지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최은시내 기자, 정민경 기자
cesn@fi.co.kr, jmk@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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