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립형 멀티숍 ‘초코’ ‘스페시맨’ ‘모옌’ 인기
3월 5일 월요일 오후.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부평 문화의거리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한산했다.
지난 주말 신학기를 맞아 가방과 운동화를 사러 나온 학생들로 북적였던 탓에 매장마다 이곳저곳 정리와 단장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부평 문화의거리는 전국적으로도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의류 상권이다. 2000년대 초반 캐주얼 시장이 활황세일 때에는 대다수 매장들이 월 평균 매출 1억원을 넘길 정도였다. 그러나 전국 대부분의 노면상권이 그렇듯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거품이 빠졌다. 여전히 잘되는 매장들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브랜드의 부침에 따라 입점과 퇴점을 반복하면서 고전했다.
하지만 수원 남문, 안양 일번가, 안산 중앙동 등 수도권 핵심 상권들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에 비해 부평역 상권은 낙폭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이 업계의 견해다. 「로엠」의 경우 지난해 연간 16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부평 문화의거리가 선방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초코 ‘모옌’ ‘스페시맨’ 같은 멀티 브랜드 편집매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노면상권 뿐만 아니라 백화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스트리트·도메스틱 홀세일·디자이너 브랜드들로 구성되어 있는 편집매장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패션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을 거리로 불러모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들 편집매장은 지난 2006년 '초코'가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같은해 겨울 '스페시맨'이 들어섰고 2008년에는 '모옌'까지 가세하면서 3강 체제를 갖췄다.
편집매장이라는 운영 형태는 같지만 매장 콘셉과 구성 브랜드가 다르기 때문에 불필요한 경쟁 없이 서로의 영역을 만들어 올 수 있었다.
주변 상인들의 입장도 대부분 긍정적이다. 이곳에서 12년째 「쉐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서재원 사장은 젊은층 소비자들을 유입할 수 있는 이들 멀티숍이 생기면서 상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유동인구도 늘었고 상권 전체적인 모습도 업그레이드되었다. 브랜드 의류 대리점과 이런 형태의 멀티숍, 또 먹자골목이 더해지면서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권 구성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홀세일로 기틀 다지고 온라인으로 떴다
이들 멀티숍의 공통점은 같은 부평 상권에 있다는 것 말고도 두 가지가 더 있다.
첫 번째는 판매 상품 대부분을 사입해서 판매한다는 점이다. '초코'와 '모옌'은 100%, '스페시맨'은 초창기 사입체제였다가 요즘은 사입과 위탁이 70:30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사입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호상 '모옌' 사장은 '리스크에 대한 적극적인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사입제가 위탁제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느냐다. 위탁제로 운영하면 들여온 물량을 다 팔지 못해도 책임은 공급자에게 있다. 하지만 사입으로 운영하려면 직접 브랜드 선정부터 수량 결정, 판매 후 재고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언뜻 생각하면 위탁 운영이 더 효율적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책임 소재가 나에게 없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함이 없다는 얘기다. 판매하는 직원들도 그만큼 애착이 높지 않다. 그러다보니 결국 매출이 늘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온라인 쇼핑몰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상권이 활성화됐다고는 하지만 매장 한두 개로는 큰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모두 매장 매출 못지않게 온라인 매출이 나온다.
홍이슬 '스페시맨' 총괄 매니저는 "매장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하는 상품들을 판매할 수 있는 공간도 되고 매장에 걸기 전 사전 테스트용 차원에서도 온라인 몰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트리트 브랜드 집합소 - 초코
'초코'는 부평에서 「MF」 「SS501」 등의 브랜드 대리점을 운영하던 권일현 사장이 2006년 문을 연 스트리트 브랜드 멀티숍이다.

「스투시」 「헌드레드」 같은 정통 스트리트 브랜드부터 「펜필드」 「써로굿」 등 요즘 뜨는 브랜드들까지 모두 70~80개 브랜드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초창기 99㎡(30평) 남짓한 매장에서 시작해 지금은 3층짜리 건물로 이전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의 인기도 상당하다.
전국구 멀티숍 - 헨느드모옌
'모옌'은 2007년 온라인에서 먼저 시작한 멀티숍이다.
초창기 「나노유니버스」 「저널스탠다드」 등 주로 일본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매장을 구성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브랜드의 상품을 판매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모옌'은 주목받기 전의 브랜드를 찾아내서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 점이 강점이다. 「닥터데님」과 「에이프릴77」 「탐스슈즈」는 국내에 디스트리뷰터가 없던 시절부터 현지에서 직접 제품을 공수해올 정도로 안목이 높다.
고객이 먼저 알고 찾아오는 곳 - 스페시맨
'스페시맨'은 2006년 문을 열었다. 초창기 49㎡(15평)가 채 안되는 곳에서 시작해 지금은 부평에 2개, 왕십리, 천안에 각각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에는 온라인 몰도 오픈했다. 「커버낫」 「라이풀」 등 캐주얼한 브랜드부터 「스투시」 「헌드레드」 같은 정통 스트리트 브랜드까지 150여개 브랜드를 취급하고 있다.
노면 상권의 부활, 리테일 활성화가 해법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비단 새로운 유통채널로 떠오르고 있는 멀티숍 형태의 유통이어서가 아니다.
천편일률적인 의류 브랜드 대리점으로만 짜여져 있는 기존 패션 상권에서 '패션 리테일'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일현 '초코' 사장은 "브랜드 대리점을 운영하다 멀티숍을 하겠다고 나서니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미친짓'이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더이상 이렇게 많은 브랜드 매장이 생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결단했다. 물론 초기에는 고생 많이 했다. 오더에 실패해서 엄청나게 많은 재고를 떠안은 적도 있었고 좋은 브랜드 상품을 사입하기 위해 발품도 많이 팔았다. 대리점을 계속했으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과 직원들의 역량이 많이 늘어났고 지금의 '초코'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의 많은 노면 의류상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브랜드를 전개하는 패션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현실은 더 암담하기만 하다. 하지만 부평 문화의거리 사례를 보면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기존 대리점주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새로운 형태의 패션 유통에 뛰어들고 이를 통해 전국에서 새로운 성공 사례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서호상 헨느드모옌 대표>
한국의 '빔스' 만드는 게 꿈
어떻게 '모옌'을 시작하게 됐나?
대학 때 전공은 건축을 했고 직업은 편집디자이너였다. 그런데 워낙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패션쪽 일을 하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고 결국 2007년 5월 온라인쇼핑몰을 오픈했다. 이듬해에는 현재 건물 2층에서 33㎡(10평) 남짓한 매장을 시작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시작했다. 현재는 1층은 여성, 2층은 남성, 3층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모옌'의 특징은 무엇인가?
새로움이다. 개인적인 특성도 그렇지만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내고 성장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즐겁다.
때문에 '모옌'에서는 소수를 제외하고 한 브랜드를 2시즌 이상 전개하지 않는다. 매 시즌 최소 5개 브랜드는 신규로 투입을 한다. 「닥터데님」 「에이프릴77」 같은 브랜드는 '모옌'에서 처음 시작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게 된 경우라고 자부한다.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시즌마다 전 세계 트레이드 페어에 참여하면서 동향을 파악한다.
또 눈여겨보는 매장들에서는 어떤 브랜드들을 선택하는지 파악한다. 해외 주요 사이트에 대한 분석도 필수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하다 보면 일종의 흐름 같은 것이 느껴진다.
멀티숍 비즈니스의 핵심은 무엇인가?
고객에게 제안할 수 있어야 하고 고객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요새 많은 브랜드들을 보면 고객의 흐름을 따라가기 급급한 느낌을 받는다. 패션 비즈니스의 속성 자체가 고객이 지금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입고 싶어할 만한 상품과 룩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 중으로 강남에 프리미엄 셀렉트숍을 오픈할 계획이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마켓 같은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직 이름은 정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의 매장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패션 숍을 만드는 게 꿈이다.
이를테면 일본의 '빔스' 같은 느낌이다.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매장을 만들고 싶다.

<홍이슬 스페시맨 총괄 매니저>
옷 잘입는 인천 남자들이 모이는 곳
어떻게 '스페시맨'을 시작하게 됐나?
2006년 남편인 정덕영 사장과 결혼하면서 49㎡(15평) 남짓한 1호점을 열었다.
둘 다 전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고 패션에는 문외한이었지만 국내에 없는 브랜드들을 사다가 팔면 장사가 잘된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시작했다.
초기에는 어떤 브랜드들을 팔았나?
당시 유행하던 「슈프림」 같은 브랜드들이었다. 일본 중저가 브랜드도 많았다.
당시만해도 홀세일과 관련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물건을 사오기 위해서는 무조건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홍대, 이태원 등지의 멀티숍을 뻔질나게 찾아다니며 벤더나 총판업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현재는 어떤 브랜드들로 구성되어 있나.
매장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3개월 전 148㎡(45평) 규모의 4호점(부평)을 오픈하면서 기존 1호점(부평)은 「스투시」 「헌드레드」 등 정통 스트리트 브랜드 위주로 바꿨다. 4호점은 「커버낫」 「라이풀」 「디아프바인」 처럼 캐주얼 성향이 짙은 브랜드들로 채웠다. 2호점(왕십리)과 3호점(천안)은 매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시즌 별로 조금씩 변동을 준다.
6년 만에 매장을 4개로 늘리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 같다.
그걸 다 말로 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웃음) 처음 1년은 물건을 터무니 없이 비싼 값에 사오기도 하는 등 시행착오도 많았다. 월세도 거의 내지 못해 보증금을 절반 이상 까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직 젊고 부부가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스페시맨'의 자랑인 7명의 직원들이 있다. 처음 매장을 내고 월급 30만원을 줄 때 함께 했던 직원은 현재 천안점의 총괄 매니저로 있고 이후로도 현재까지 입사해서 퇴사한 직원이 없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성장하고 또 그들이 독립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뒷바라지 하고 싶다.
'스페시맨'을 운영하는 철학은 무엇인가?
고객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 것이다. 온라인 몰을 오픈하고 처음 한 달 동안 받은 주문이 달랑 2개였다. 그렇지만 첫 주문의 감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떨린다. 그때 온라인 주문 고객에게 자필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모든 고객에게 일일이 편지를 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고객의 취향과 특성이 기억에 남게 되고 고객에게 설명해주기 위해서라도 상품 전문가가 된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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