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1%의 글로벌 리더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엔젤아우라(Angel Aura)’라는 후광이 그 것. 엔젤아우라는 세상과 소통하는 힘이자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소통 에너지다. 상대방으로부터 존경을 이끌어 내는 ‘통력’은 지력, 재력뿐 아니라 배려심, 포용력, 통찰력, 집중력, 창의력 등이 결합될 때 엔젤아우라로 완성된다.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 5CQ를 알아본다. <편집자주>
엔젤(Angel)은 사전적으로 성스러움, 경건함, 선의 결정체인 천사를 뜻하며 아우라(Aura)는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즉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운’이나 ‘에너지’를 뜻한다. 이 둘을 합치면 ‘천사에게서 나오는 기운’ 내지 ‘천사에게서 흘러나오는 긍정적인 힘’ 이 된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착한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착한 행동은 실속이 없다’ ‘착한 사람이 손해 본다’는 등 ‘선하다’는 것은 종종 성공의 방해물이 된다. 하지만 엔젤아우라에서 말하는 선하게 산다는 것은 단지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의 ‘선(善)’은 ‘상대와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소통의 긍정적인 힘’을 말한다.
<엔젤아우라>의 저자 최정화 외대교수는 28년 동안 국제 통역사로 일하면서 전 세계 수많은 글로벌 리더들을 만났다. 그 대상은 마에스트로 정명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서부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는 30년 넘게 글로벌 수퍼 리더들을 만나면서 발견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들이 리더로 인정받는 것은 재능, 재력, 직위가 아닌 그들이 지니고 있는 선한 기운인 ‘엔젤아우라’ 라는 것이었다.
그는 서문을 통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 능력을 담아 내는 ‘인격적인 그릇’이 작으면 사회에서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기 힘들며, 글로벌 리더로서 세상과 소통하기 힘들다” 라며 “엔젤아우라는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을 진정한 리더로 인정하게끔 만드는 리더들의 몸에 밴 배려심, 포용력, 통찰력, 집중력, 지적 호기심 등으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통력’이다.
글로벌 리더들에게는 엔젤아우라를 완성시키는 5가지 통력(通力)인 5CQ는 집중 지수(Concentration Quotient), 문화 지수(Culture Quotient), 소통 지수(Communication Quotient), 협력 지수(Cooperation Quotient), 창의력 지수(Creativity Quotient)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집중 지수(Concentration Quotient)
소크라테스 왈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친절한 금자 씨 왈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했다.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을 먼저 잘 알아야 한다. 즉 자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요즘 말로 변주하면 ‘나는 행동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가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빨리빨리’에 익숙해지고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행동하는 데만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싫증을 내기도 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지 못하는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나랑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핑계를 둘러 댄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 역시 자신에게 몰두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가 장벽에 부딪히는 순간 너무 쉽게 포기한다. 자신감 없는 수동적 자세는 늘 실패라는 굴레와 패배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30년의 세월을 묵묵히 남성복 한 길만을 걸어온 이가 있다. 양복점 재단사에서 보세 공장 직원을 거쳐 연 2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김기복 뇌성 사장이 그 주인공.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우연히 양복점에 취직한 그는 손재주가 좋아 재단이나 패턴을 곧잘 따라했다. 도제식 호된 훈련에도 꿋꿋하게 1년을 버텼다. 그렇게 1년을 지나니 남성복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1970년대 초, 거리마다 양복점과 양장점이 넘쳐났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신의 직감을 따라 기성복을 만드는 보세 공장에 입사했다. 재단은 물론 생산, 관리, 출고 등 전 과정을 혼자 담당하며 홀로서기의 기반을 다진 지 6년.
유재부 기자
jby@fi.co.kr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