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사거리와 한남 2동사무소를 잇는 대로 양편에 자리잡고 있는 이태원 상권.
버스에서 내려 사거리 쪽으로 걸어가다보면 양쪽 길가에 의류점, 호텔, 스포츠용품매장, 잡화점, 기념품매장, 가죽전문점, 패스트푸드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5∼6평 규모의 작은 점포들이 미로처럼 얽혀있어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여기가 한국이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쇼핑백을 들고 삼삼오오 매장 앞을 기웃거리는 모습도 이태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외국인도 내국인도 발길 돌려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코스로 자리잡을 만큼 외국인들에게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내국인들 사이에서도 ‘진짜와 가장 흡사한 이미테이션 상품을 사려면 이태원으로 가라’고 말할 정도로 위세를 자랑했던 이태원에 찬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검찰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가짜 수입명품을 파는 점포 수가 크게 줄었고 또 유명 브랜드의 유사 상품을 찾는 고객도 이전보다 크게 줄고있기 때문. “골목에서 이미테이션을 파는 점포들은 하루에 고객이 두, 세 명 찾아올까 말까할 정도”라는 것이 이태원 상인들의 이야기다.
특히 이태원 상권의 주고객인 외국인들의 발길마저 뜸해졌다. 외국인들이 동대문, 남대문 시장과 명동 등으로 발길을 돌리기 때문. 한 상인은 “예전에는 물건도 물건이지만 우선 말이 통하니까 외국인 관광객이 이태원을 선호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동대문이나 남대문의 상인들도 간단한 회화 정도는 하는 편이고 영어나 일어에 능통한 상인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먼저 교통이 편하고 쇼핑하기가 편한 동대문, 명동 등을 둘러보고 이태원은 마지막 코스로 들르는 외국인이 많다”고 말했다. 여성의류 매장의 한 판매원은 “구매고객 중 일본인이 70%를 차지했었는데 최근 일본 경기가 냉각되면서 일본인 관광객 비중이 30%로 줄었다”면서 “한꺼번에 무더기로 사가던 돈 많은 일본인 고객이 줄어 평일에는 매출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보다 주로 내국인 고객이 많이 찾던 매장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빅사이즈 의류 전문점의 한 점주는 “이태원 내에서도 빅사이즈 의류를 파는 매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공급만 많은 상태”라면서 “거기다가 최근에 경기도 안 좋아 지난해 매출은 99년에 비해 1/3 수준 정도밖에 안 된다”며 씁씁한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외국인으로 북적거렸던 이태원 상권이 이렇게까지 그 기세가 수그러든 이유는 무엇일까?
'다 가짜' 상품만 팔기 때문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이태원에서 파는 상품은 ‘다 가짜’라는 인식 때문.
이태원에서 만난 조원균(26세, 일산)씨는 “이태원에서 물건을 살 때는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싼 맛에 산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고등학생 때 왔을 때는 옷들이 다 좋아 보이고 예뻐 보였는데 지금은 바지 같은 것 빼고는 잘 안 사게 된다. 티셔츠나 외투 같은 것은 진품인지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민수(24세, 돈암동)씨는 “돈이 있으면 압구정 힙합 매장에서 옷을 사고 돈이 없으면 가짜인 것을 알지만 이태원에서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오리지널 상품을 사면서도 소비자들은 찜찜한 느낌을 갖는다. 진짜 브랜드 상품이면 왜 여기서만 싸게 팔겠느냐는 것이 소비자들의 생각. 「나이키」매장의 한 판매원은 “우리 매장에서 물건을 사는 고객들이 타 매장보다 가격이 조금 싸다는 이유로 ‘여기서 파는 건 다 가짜 아니냐’고 물을 때가 있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힙합 매장의 한 점주는 “이태원 상권 특성상 비싸게 받지 못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여기 옷이 압구정동보다 싼 이유가 ‘가짜이기 때문’아니냐고 묻는데 그렇다고 비싸게 받을 수도 없어 난처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정찰제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가격을 깎아 팔면 가짜 상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물건의 가격도 가게마다 ‘천차만별’이고 힙합 상품도 동대문, 남대문과 비교했을 때 ‘싸지 않다’는 것이 고객들의 반응이다.
유치원 교사 정승원(29세, 이촌동)씨는 “이미테이션 물건을 사러 가끔 오는데 비슷한 물건인데도 가게마다 가격이 다르다”면서 “바가지를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에 혼자 쇼핑하는 경우는 드물고 이태원에 대해서 잘 아는 친구들과 함께 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호영(23세, 사당동)씨는 “예전에는 동대문에 힙합 매장이 없었는데 요즘엔 많이 생겼다”면서 “같은 물건인데도 동대문에서 사면 1천원∼2천원 더 싸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와서 즐길 만한 ‘놀이 문화 공간’이 없다는 것도 이태원에 대한 불평 중 하나. 잡지사에서 일하는 정인영(26세, 방배동)씨
유정원, 조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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