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에 무리지어 서식하는 산양 ‘스프링벅’. 앞서 가는 산양들이 풀을 먹고 지나가면, 뒤를 쫓는 산양들은 풀을 먹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 한다.
앞에 가는 양들은 이에 뒤지지 않으려고 차차 발걸음이 빨라진다. 결국 20∼30마리에 달하는 ‘스프링벅’ 무리는 모두 다 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풀을 뜯어먹기 위해 앞서려고 했지만, 그 다음엔 앞서기 위해 무작정 달린다. 그들은 왜 뛰는지도 모르는 채 그대로 내달리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무엇을, 왜 팔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따라가기만 하는 기업은 곧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고 말 것이다.
백화점과 패션기업은 스프링벅과 같은 운명에 처한 것일까?
‘이 데님 재킷이 잘 팔리니, 이 디자인으로 판매가 7만원짜리 상품을 만듭시다’
여성 캐릭터 브랜드 A를 맡고 있는 B이사는 최근 어느 유력 백화점 바이어의 이 같은 요구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16만8천원짜리 상품을 7만원대로 만들려면 마크 업을 낮추고 봉제공임을 깎아서는 도저히 가격대를 맞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싸구려 원단을 써야 하나? 그러면 진 캐주얼 전문 브랜드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잃을 것이 분명한데…’
여성복 시장에서 기획 상품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지난 99년 하반기 일부 캐릭터 브랜드들이 리버시블 순모 코트, 털·가죽 소재 상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다량 내 놓아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부터다.
패션기업은 팔릴만한 아이템이 없는 비수기에 매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저렴한 가격의 기획 상품을 내놓았다.
또 재고 원단을 소진하거나 고객 감사 또는 이벤트를 위해 대량 구매와 대량 생산을 통해 만들어 낸 상품이 기획상품. 패션 기업도 이익률은 낮지만 대량판매로 이익을 남기고 소비자도 좋은 상품을 정상 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장만할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과 비수기 대책보다는 백화점의 매출을 보전해주고 명줄을 늘이는 용도로 기획 상품의 기능이 변질되고 있다.
이익은 떨어지고 기획·생산·재고 부담 늘어
기획상품을 전개하고 있는 여성복 업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익을 내기 힘든 데도 백화점에서 매장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은 백화점 이외에는 매장을 개설하고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할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오르는 마진과 싼 가격대 상품을 원하는 백화점측의 요구는 기획상품을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와 이익 극대화를 위한 방안이 아니라 순간의 아픔을 잊기 위한 근시안적인 처방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백화점 기획 상품의 마진은 롯데 본점, 잠실, 영등포 등 롯데 서울 지역점포가 30%, 지방점이 24∼28%며 현대와 신세계 백화점이 24∼26%다. 또 공동 기획 상품의 마진은 99년 하반기에는 10%선이었으나 현재는 22∼26%로 뛰었다.
전국의 2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여성 캐릭터 브랜드의 영업 담당자는 “30% 마진에 정상 상품보다 50%가량 싼 상품을 판매해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박리다매’식의 영업을 해야 한다. 가격을 수트 20만원이하, 원피스 12∼16만원, 팬츠·스커트 5만9천∼7만9천원선에 맞추기 위해 일반적으로 순수 제조 원가에 2.5∼3배수를 붙여 판매한다. 그러면 80∼90%는 팔아야 이윤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브랜드간 판매 경쟁이 치열해져 판매율이 70%를 밑도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브랜드는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물량을 적게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물량을 소량 생산하게 됨에 따라 봉제 공임, 원·부자재 등의 제조 원가를 낮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싼 소재 사용으로 제조 원가를 맞추고 있다.
결국 기획상품은 소재, 패턴, 컬러 등이 소비자들의 니드에 맞지 않아 제때에 팔지 못하면 한 시즌만에 걸레가 되고 마는 ‘단명 상품’이 되고 있다.
‘품질 저하’ ‘카피’ 심각
값 싼 시장 소재의 사용으로 인한 ‘품질 저하’는 브랜드, 백화점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은 “상품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기획 상품의 퀄리티 저하는 브랜드 이미지 저하와 백화점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또 “나쁜 퀄리티 상품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저하시켜 판매율을 더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랜드간의 공공연한 ‘카피’행태도 기획 상품의 또 다른 문제.
탄탄한 매출 탓에 기획 상품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리딩 브랜드들도 ‘기획 상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리딩 브랜드들의 인기 상품이 중·하위
엄수민·민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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