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대한민국 국민들은 ‘월드컵’이라는 열병을 앓았다.
말 길을 못 알아듣는 어린아이들부터 60∼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직업,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한국 경기가 있는 날은 ‘대한민국∼’‘오∼필승 코리아’라는 함성이 온 거리에 울려 퍼졌으며, 거리는 온통 붉은 물결로 도배가 됐다.
월드컵 응원 열기가 고조되면서 거리로 흘러나온 사람들은 ‘비 더 레즈(Be the reds)’라는 문구가 써진 티셔츠에 태극기, 페인팅, 가발, 두건 등을 이용한 갖가지 패션 소품들로 이색적인 응원 광경을 연출했으며 기발하고 개성있는 옷차림들은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온 국민의 시선과 발길을 TV로, 거리로 끌어 모은 2002 한·일 월드컵 축제는 막을 내렸지만 월드컵 축제는 국민들의 ‘감성과 의식의 변화’라는 큰 흔적을 남겼다.
월드컵이 패션시장에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이며 한 차례의 열병을 앓고 난 소비자들의 감성과 패션 니즈에 발맞추기 위해 패션 업체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응원도 패션도 대담하게
2002 한·일 월드컵이 남김 가장 큰 기억은 한국 축구팀의 4강 진출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응원 열기.
지난 월드컵에서는 ‘한국 사람들 맞어?’라는 감탄 섞인 질문이 흘러나올 만큼, 마치 해외 거리 축제에서나 봐왔던 화려하고 기발한 스타일의 응원 패션과 열광적인 응원이 전국 곳곳에서 펼쳐졌다.
16강, 8강, 4강…,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면서 거리에는 갖가지 기발한 패션 소품들이 등장해 응원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주목을 끌었던 상품은 ‘비 더 레즈(Be the reds)’티셔츠. 업계관계자들은 전국에 레드 열풍을 몰고 온 붉은색 티셔츠는 2002년 ‘최대히트상품’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비 더 레즈’티셔츠는 붉은색 바탕에 ‘Be the reds’(모든 축구 응원단이 ‘붉은 악마’가 되자고 펼치는 캠페인 슬로건)란 흰 글씨가 가슴에 쓰인 반팔 티셔츠. 붉은 악마의 공식 응원복은 아니지만 ‘레드’라는 컬러 이미지로 전국을 하나되게 만든 매개체다.
특히 붉은색은 ‘공산당’, ‘적자(Red lnk)’,‘흥분’ 등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터부시되어 왔었던 컬러. 레드 열풍은 이 같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던 ‘레드 콤플렉스’를 깼다는데서 단순한 ‘유행’의 의미를 넘는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여성 영 캐주얼 업체 디자이너들은 “일반적으로 붉은색은 디테일이 아닌, 전체 컬러로 사용하거나 전체 상품 중 많은 양으로 구성하기에는 부담이 있다. 잘못 쓰면 너무 야하거나 천해보일 수 있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붉은색은 아줌마 옷 색깔’이라는 고정관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나 최근에는 「A6」, 「비엔엑스」 등의 스포티즘이 가미된 영 캐릭터 브랜드들이 원색적인 레드, 블루, 옐로우 컬러를 사용한 상품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실제 월드컵때 ‘비 더 레즈’와 차별화하기 위해 「푸마」, 「나이키」, 「A6」, 「바엔엑스」, 「마루」 등의 브랜드에서 붉은색 티셔츠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월드컵을 통해 기존에 쉽게 접하지 않았던 레드, 블루 등의 원색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 대한 시선을 달리해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태극기’는 가장 인기 있었던 응원 도구. 태극기가 그렇게 멋진 패션 소품이 될 수 있는지 이제야 알았다.
여성들은 태극기로 스커트나 바지는 물론 배꼽티까지 만들어 입고 응원에 참가했다. 스카프로 두건으로 또 스티커로 페이스페인팅으로 태극기는 둘러지고 씌워지고 그려졌다.
열혈 남성들은 상반신을 온통 붉은색으로 페인팅하고 등에는 좋아하는 선수들의 이름과 등번호를 써넣기도 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거리로 나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는 지난달 10일 미국전 때 눈 부위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고도 붕대를 맨 채 투혼을 발휘한 황선홍 선수의 정신을 살리자는 의미. 이들은 오른쪽 눈 부위에 피가 난 것처럼 붉은색 물감으로 칠도 했다. 붉은색 실과 파란색 실을 이용해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여성과 축구공처럼 오각형 무늬 부분들만 길이 1㎝정도 남긴 채 나머지는 빡빡 밀어버린 남자들도 눈에 띄었다.
빨간색 고무장갑을 닭 벼슬처럼 머리에 뒤집어쓰는가 하면 장식용 소뿔을 머리에 쓰는 등 기발한 패션 소품들도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18일 이태리전 때는 목욕용 타월인 ‘이태리 타월’을 양손에 끼고 나오거나 ‘8강’이라고 써넣은 8광 화투 피켓에 거스 히딩크 감독의 사진을 흔드는 사람들도 카메라에 자주 포착됐다.
‘감성과 의식의 변화’ 눈여겨봐야
월드컵이 남긴 흔적 중 가장 분명한 것은 국민들의 ‘감성과 의식의 변화’다.
거리 응원에 참여했던 이현정(23세. 분당)씨는 “서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엄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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