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사체와 광합성, 해조류까지…생명과 순환의 원리에서 찾는 새로운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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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생화학 전문업체 마이코웍스가 버섯 균사체를 활용해 만든 대체 가죽 ‘레이시’ |
우리는 오랫동안 패션 소재가 어디에서 오는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가죽은 동물에서, 면은 밭에서, 울은 양에서, 실크는 누에에서, 폴리에스터는 석유에서 만들어진다.
이들 소재는 오랜 시간 패션산업을 이끌며 저 마다의 장점을 인정받아 왔다. 가죽은 고급스러운 질감과 뛰어난 내구성을, 면은 편안한 착용감을, 울은 따뜻함을, 실크는 우아한 광택을, 폴리에스터는 높은 생산성과 합리적인 가격을 강점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익숙한 소재일수록 환경적인 부담도 함께 안고 있다. 가죽은 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과 물 소비, 토지 이용, 동물복지 문제와 연결된다. 여기에 가죽을 가공하는 무두질과 염색 과정에서는 다양한 화학물질과 폐수를 야기한다.
면은 대표적인 천연섬유지만 대량 재배를 위해 많은 물과 농약, 비료가 필요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토양 황폐화와 물 부족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울 역시 메탄가스 배출과 방목지 훼손 등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크는 천연섬유 가운데 가장 고급 소재로 꼽히지만 생산 과정의 노동집약성과 생명윤리 문제, 제한적인 생산량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패션산업의 대량 생산 시대를 이끈 폴리에스터도 예외는 아니다. 석유를 원료로 생산되는 만큼 제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고, 사용 후에는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세탁 과정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해 해양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대부분의 소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환경과 충돌해 온 셈이다.
하지만 이제 좋은 소재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아름다움과 내구성,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원료를 얻는 과정부터 생산과 사용, 폐기 이후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전 과정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버섯이 만드는 새로운 가죽 ‘레이시’
이 같은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소재 기업 마이코웍스가 개발한 ‘레이시’다. 레이시는 버섯의 뿌리 역할을 하는 균사체를 활용해 만든 차세대 대체 가죽이다.
균사체는 땅속에서 가느다란 실처럼 촘촘하게 뻗어나가며 그물망 구조를 만든다. 이 구조는 가볍지만 강도가 높고 유연성도 뛰어나다. 마이코웍스는 이러한 균사체의 성장 과정을 정밀하게 제어해 천연가죽과 비슷한 질감과 물성을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레이시의 의미는 단순히 ‘버섯으로 만든 가죽’이라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소재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기존 가죽은 동물의 가죽을 얻은 뒤 무두질과 염색, 가공 과정을 거쳐 제품으로 완성된다. 인조가죽은 석유계 합성수지를 이용해 가죽의 외형을 구현한다. 반면 레이시는 살아 있는 균사체가 자라는 과정을 그대로 소재 생산에 활용한다. 가죽을 채취하거나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형태와 특성을 갖도록 균사체를
길러내는 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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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카본 랩은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인 남세균을 직물 표면에 배양해 의류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연구한다. |
살아 있는 옷의 가능성 ‘광합성 웨어러블’
레이시가 자연의 구조를 소재에 적용한 사례라면, 광합성 웨어러블(Photosynthetic Wearable)은 자연의 기능을 옷에 담으려는 시도다.
영국 디자인 연구 그룹 ‘포스트 카본 랩’은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인 남세균을 직물 표면에 배양해 의류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옷을 더 이상 완성된 제품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의류 표면은 염색이나 프린트, 발수·방수·항균 가공처럼 필요한 기능을 입히는 공간이었다. 한번 가공이 끝나면 정해진 기능만 수행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능도 점차 떨어진다.
하지만 광합성 웨어러블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직물 위에서 살아 있는 미생물이 활동하면서 기능을 유지한다. 빛과 공기, 수분 등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광합성을 이어가기 때문에 의복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의 생명 시스템이 된다.
이런 개념은 패션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고 있다. 옷은 단순히 몸을 보호하거나 디자인을 표현하는 제품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지속가능한 패션은 주로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옷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물을 적게 사용하는 공정, 탄소 배출을 줄이는 생산 방식, 재활용 소재 사용, 오래 입을 수 있는 디자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광합성 웨어러블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환경에 덜 해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옷 자체가 환경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연구 단계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는 미래 패션이 단순히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생명 활동까지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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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바이오 소재 기업 킬 랩스는 해조류에서 추출한 바이오폴리머를 활용해 만든 해양 기반 섬유 ‘켈선’을 만들었다. |
바다에서 찾은 새로운 섬유 ‘켈선’
세 번째 사례는 자연의 순환성을 활용한 소재다. 미국 바이오 소재 기업, 킬 랩스가 개발한 ‘켈선’은 해조류, 특히 켈프에서 추출한 바이오폴리머를 활용해 만든 해양 기반 섬유다.
해조류는 매우 빠르게 자라며 일반 농작물처럼 넓은 농경지나 많은 담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특징 덕분에 기후 위기와 물 부족 문제가 커지는 시대에 새로운 섬유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섬유산업은 크게 두 가지 원료에 의존해 왔다. 하나는 면처럼 땅에서 재배하는 천연섬유이고, 다른 하나는 폴리에스터처럼 석유를 기반으로 한 합성섬유다.
켈선의 가치는 단순히 해조류로 만든 친환경 섬유라는 데만 있지 않다. 패션산업의 원료 공급 기반을 육지에서 바다로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해조류는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생물이다. 생산 과정에서 농업용 토지나 담수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사용이 끝난 뒤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까지 고려할 수 있어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줄이는 대안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무엇으로 만드냐’ 보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시대로
패션은 오래 전부터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왔다. 꽃과 나무의 색, 동물의 무늬, 바다와 숲의 풍경은 수많은 디자이너에게 창작의 원천이 됐다.
하지만 이제 자연은 단순히 디자인을 위한 영감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은 소재를 만드는 방식이 되고, 기능이 되며, 순환 시스템 자체가 되고 있다.
버섯의 균사체는 새로운 가죽으로 성장하고, 미생물은 직물 위에서 광합성을 하며, 해조류는 미래 섬유의 원료가 된다. 자연은 더 이상 패션이 사용하는 자원이 아니라, 함께 기술을 만들어가는 파트너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 소개한 세 가지 소재가 당장 패션산업의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레이시, 광합성 웨어러블, 켈선 모두 아직은 발전 단계다. 생산 규모와 가격 경쟁력, 품질 안정성, 내구성, 소비자 인식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패션산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분명한 신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의 패션은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될 것이다. 자연에서 가져오는 산업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만드는 산업으로의 전환. 바로 그 변화가 미래 패션 소재가 향하는 가장 중요한 지향점이 될 것이다.
김원 대표
nyxnox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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