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성장하는 용기가 ‘웰니스 패션’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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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의 웰니스 인사이트 포커스 08

2026-05-18 오전 9:00:39

불완전함을 인정한 브랜드가 패션 시장을 바꿔온 세 가지 사례



담론은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질 때 의미를 갖는다. 철학이 아무리 정교해도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관념에 머문다. 이번 회는 그 간극을 실제로 건넌 브랜드들의 이야기다.


지난 회에서는 킨츠기(金?ぎ)를 이야기했다.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붙이는 일본의 도자기 수리기법. 결점을 감추는 대신 균열에 빛을 새기는 방식이다. 불완전함이 어떻게 브랜드의 고유성이 될 수 있는지, 그 철학의 언어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이 철학은 실제 비즈니스로 구현될 수 있을까.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어떻게 시장을 만들고 팬덤을 키우며 글로벌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는지. 이번 회에서는 그 답을 이미 성과로 증명한 브랜드들을 통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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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의 진정성은 팬덤이 브랜드를 떠나지 않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고백의 기술, 가니(GANNI)


덴마크 패션 브랜드 가니는 2013년 선언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브랜드가 아닙니다(We're not a sustainable brand).”


당시는 업계 전체가 지속가능성을 경쟁적으로 앞세우던 시기였다. 이 선언은 역설적으로 가니를 업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들었다.


가니는 매년 책임 보고서를 발행한다. 성취와 실패를 함께 공개하는 방식이다. 잘된 것만 골라 보여주는 홍보 문서가 아니다. 수익성 높은 버진 레더 카테고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그 배경과 예상되는 리스크를 그대로 공개했다. 상업성과 지속가능성이 충돌하는 현실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 긴장을 함께 짊어질 파트너로 고객을 대했다.


가나의 언어는 명확하다. ‘완벽이 아닌 진보’를 추구한다, 완벽을 내세우는 브랜드는 그 경직성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준이 높을수록 균열이 드러났을 때의 낙폭도 크다. 반면 약점을 먼저 드러내는 브랜드는 변화 앞에서 유연하게 살아남는다. ‘가니 걸스’라는 글로벌 팬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완벽을 약속하는 것이 마케팅이라면, 실패를 고백하는 것은 진정성이다. 그리고 진정성은 팬덤이 브랜드를 떠나지 않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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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스는 남들이 외면한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먼저 해결했다.



고유성의 발견, 이미스(EMIS)


2017년 작은 온라인 숍으로 시작한 이미스(EMIS)는 2024년 매출 863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155% 성장률이다. 도쿄 이세탄, 방콕, 홍콩을 거쳐 상하이 직영점 오픈 당일에는 긴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빠른 성장임에도 그 출발은 매우 단순한 관찰에서 비롯됐다.


시작은 볼캡 하나였다. 시중의 모자 대부분이 서구형 두상에 맞춰 설계되어 있어 동양인의 얼굴형에는 맞지 않았다. 누구나 느꼈지만 수십 년간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불문율 같은 거였다. 불편함은 있었지만 시장은 그것을 해결할 이유를 찾지 못했거나,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이미스는 그 지점을 정면으로 봤다. 완벽한 제품을 새로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외면한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먼저 해결했다.


킨츠기처럼 이미스는 시장의 균열을 고유성으로 전환했다. 불편함을 그대로 두지 않고 그 자리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새겨 넣었다. 문제를 먼저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브랜드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취약성의 시대가 브랜드에 요구하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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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츠마마는 전국의 폐페트병을 수거해 실로 뽑아낸 니트 가방을 선보였을 뿐이다.



동반자적 관계, 플리츠마마(Pleatsmama)


2017년 론칭한 플리츠마마는 친환경 브랜드로서의 도덕적 우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저 전국의 폐페트병을 수거해 실로 뽑아낸 니트 가방을 선보였을 뿐이다.


많은 친환경 브랜드들이 성과와 수치를 앞세울 때 플리츠마마는 다른 선택을 했다. 수거 과정의 현실, 소재 개발 과정에서의 실패, 개선의 흔적들을 고객과 함께 공유했다.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진행 중인 과정을 보여줬다. 환경이라는 거대한 담론은 ‘당신이 버린 페트병이 이 가방이 됩니다’라는 구체적인 리추얼로 내려왔다.


고객은 가방을 산 것이 아니라 순환의 여정에 동참한 것이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과 여정에 참여하는 고객은 브랜드와 맺는 관계의 깊이가 다르다. 완성품을 파는 대신 함께 완성해가는 이야기를 판 방식. 이것이 가니의 고백, 이미스의 발견과 함께 취약성 언어의 세 번째 문법이다.


웰니스 브랜딩의 세 가지 공식


이들 세 브랜드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는 고백의 기술이다. 부족함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를 브랜드의 기본 언어로 삼는다. 이것은 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진정성의 선언이다. 완벽을 연기하는 브랜드는 균열이 드러나는 순간 무너진다. 고백하는 브랜드는 처음부터 균열을 인정하기 때문에 무너질 것이 없다.


둘째는 결함의 재발견이다. 시장이 오랫동안 결점으로 여겨온 것을 고유성으로 전환한다. 킨츠기는 균열을 덮는 것이 아니라 균열 위에 빛을 새긴 것처럼 이미스는 동양인의 두상을 불리한 조건이 아닌 고유한 특질로 바라보았다. 결함을 직시하는 순간 그것은 차별점이 된다.


셋째는 연결의 리추얼이다. 고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같은 고민을 함께 짊어지는 동료로 대한다. 브랜드가 고객의 온전함을 회복시키는 도구가 될 때, 구매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삶의 의식이 된다. 그 순간 브랜드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것이 된다.



여정으로서의 브랜드


가니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고백하며 더 강해졌다. 이미스는 아무도 보지 않은 결핍을 발견하며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플리츠마마는 폐기물로 순환의 리추얼을 만들었다. 세 브랜드 모두 완벽함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았다. 불완전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브랜드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동력이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브랜드는 기준을 지키는 데 에너지를 쓴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브랜드는 그 에너지를 고객과의 관계를 깊게 만드는 데 쓴다. 전자는 방어하고 후자는 성장한다. 시장은 언제나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지금 당신의 브랜드가 완벽하지 않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 불완전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보고, 그것을 고객과 함께 짊어진다면 웰니스 패션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경계해야 할 함정이 있다. 다음 회에서는 완벽함을 연기하다 무대에서 내려온 브랜드들을 만난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대신 완벽의 서사를 고집하다 스스로 무너진 거인들의 이야기다.




정의정 회장
dorri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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