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 패턴 설계로 폐기물 배출을 원천적으로 차단
2022년 신당동 봉제공장 골목에서 마주한 풍경은 꽤 충격적이었다. 재단 후 바닥에 쌓인 자투리 원단, 이른바 ‘기레빠시’가 넘쳐나고 있었다. 당시 서울 중구청과 협력해 그것들을 수거하여 펠릿, 즉 열탄으로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버려지는 것을 에너지로 돌려쓴다는 발상이었다. 순환경제의 교과서적인 그림이었고 명분도 충분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신당동 일대 봉제공장에서 하루에 쏟아지는 자투리 원단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봉제공장 폐원단은 단일 소재가 아니었다. 폴리에스터, 면, 나일론이 뒤섞인 혼방 원단들이 한 더미에 섞여 있었다. 혼용률별 분리 작업부터 벽이었다.
섬유의 혼용률을 육안으로 판별하는 일은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다. 일일이 분류하려면 시간과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렇게 어렵사리 만들어낸 열탄은 기존 연료보다 열량이 낮았다. 발열량이 낮다는 것은 곧 경제성이 없다는 뜻이었다. 시장 경쟁력이 없었고, 관련 업체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프로젝트는 조용히 막을 내렸다.
그 경험으로 분명히 알게 됐다. 재활용은 마지막 수단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재활용이 작동하려면 분리, 수거, 처리, 재가공이라는 복잡한 공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각 단계마다 비용과 에너지가 발생한다. 현실에서 그 공정들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집중해야 할 것은 버린 다음이 아니라, 버리기 전이다. 즉, 아예 버리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설계 단계에서 만들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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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네스팅의 문제 해결은 패턴 조각을 어떻게 늘어놓느냐가 아니라 패턴 자체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렸다. |
네스팅의 한계
재단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산업의 오랜 해법은 ‘네스팅(nesting)’이었다. 패턴 조각을 효율적으로 배열해 원단 낭비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이 기법은 수십 년간 산업 표준으로 자리잡아 왔다. CAD 소프트웨어가 도입되면서 네스팅의 정밀도는 크게 향상되었다. 컴퓨터가 수천 가지 배열 조합을 빠르게 연산하며 최적의 패턴 배치를 찾아낸다.
그럼에도 이 네스팅의 평균 수율은 84~85% 수준에 머문다. 고도화된 알고리즘을 적용해도 90%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원단의 15~16%는 어떤 방식으로도 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진다는 뜻이다. 전 세계 패션 산업의 원단 생산량을 고려하면, 이 수치가 의미하는 폐기물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왜 일까.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의류 패턴은 인체의 곡선을 따라 설계된다. 어깨의 굴곡, 허리의 곡선, 소매 진동의 각도. 이 곡선들이 서로 맞물리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빈 공간이 생긴다. 네스팅은 그 빈 공간을 줄이는 기술이지, 없애는 기술이 아니다. 패턴이 곡선인 이상 낭비는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배치 알고리즘을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곡선과 곡선 사이의 공간을 0으로 만드는 것은 기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문제는 배치가 아니라 설계다. 패턴 조각을 어떻게 늘어놓느냐가 아니라, 패턴 자체를 어떻게 만드느냐를 바꿔야 한다. 그 전환점에서 AI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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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을 원천 차단하다
AI 기반 패턴 설계는 출발점이 다르다. 완성된 패턴을 효율적으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패턴 자체를 분해하고 재구성한다. 2D·3D 시뮬레이션을 통해 봉제선과 구조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패널을 쪼개고 다시 붙이는 방식으로 원단의 빈 공간을 원천 제거한다. 알고리즘은 수백 가지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하며 착용 시 움직임, 원단 결방향, 구조적 안정성을 동시에 검토한다. 사람 손으로는 불가능한 속도와 정밀도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기존 패터너는 인체 치수를 기반으로 패턴을 제도하고, 그 패턴이 어떻게 배열될 것인지는 이후 단계에서 결정된다. 설계와 배치가 분리된 순차적 과정이다. AI는 이 두 단계를 동시에 처리한다. 패턴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이 패널이 원단 위에서 어떻게 놓일 것인가'를 고려한다. 설계 단계에서 배치 효율이 내재화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패턴의 모양 자체가 원단 활용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된다.
이것은 효율화가 아니다. ‘네스팅 중심’에서 ‘구조 설계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재단 폐기물을 생산 이후의 처리 과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 이미 해결한다.
그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언스펀(Unspun)’이다. 언스펀은 AI 바디 스캔으로 소비자의 신체 데이터를 읽고, 직조 단계에서부터 의류 형태를 구현한다. 원단을 만들고, 재단하고, 봉제하는 100년 된 재단 공식이 사라지니 재단 폐기물이 생길 틈도 없다.
언스펀은 낭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낭비 자체를 없애버린다. 물론 AI 설계 방식이 아직 모든 복잡성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패턴 설계에는 소재별 물성, 봉제 방식의 차이, 착용자의 움직임 패턴 등 수많은 변수가 얽혀 있다. AI가 이 모든 변수를 완벽하게 통합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AI가 다루는 변수의 수와 정밀도는 매년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현장에서의 적용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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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펀(Unspun)은 AI 바디 스캔으로 소비자의 신체 데이터를 읽고 직조 단계에서부터 의류 형태를 구현한다. |
절약(Reduce)이 먼저다
우리는 너무 오래 동안 재활용(Recycle)에만 집착해왔다. 소재를 바꾸고, 재활용 인증을 붙이고, 친환경 라벨을 달았다. 페트병을 녹여 만든 재생 폴리에스터 재킷이 등장했고, 옥수수에서 추출한 바이오 소재가 친환경 패션의 상징처럼 홍보되었다. 그 사이 버려지는 원단의 총량은 줄지 않았다.
재활용은 소비자에게 익숙하고 브랜드에는 가시적이다. ‘이 제품은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라는 문구는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절약(Reduce)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애초에 덜 버리도록 설계했습니다'라는 메시지는 소비자에게 직접 닿기 어렵고, 마케팅 자산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환경적 효과 면에서 절약은 재활용을 압도한다.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은 폐기물은 처리할 필요가 없다.
신당동 현장에서 배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순서가 틀리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가장 앞에 있는 절약, 즉 애초에 버려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먼저다. AI는 지금 그것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김원 대표
nyxnox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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