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넘어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하는 K브랜드, 그 새로운 서사를 위하여
2026년 1월,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은 애슬레저 브랜드 안다르에 5,000억 원 규모를 투자했다. 같은 시기 올리브영의 웰니스 관련 매출은 전년 대비 864% 급증했다. 서로 다른 시장에서 나온 이 두 신호는 하나의 방향성을 가리킨다. 웰니스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안다르와 K뷰티가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좋은 소재, 합리적인 가격, 세련된 디자인 때문일까.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런 조건을 갖춘 브랜드는 이미 시장에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진짜 차별점은 다른 곳에 있다. 이들은 제품이 아니라 ‘웰니스 리추얼’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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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추얼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
제품 아닌 ‘웰니스 리추얼’을 팔다
K뷰티의 성공 요인은 화장품을 판 것이 아니라 ‘나를 정성껏 돌보는 시간’이라는 웰니스 리추얼을 팔았기 때문이다. 결과가 증명한다. K뷰티 시장은 2018년 52억 달러에서 2024년 102억 달러로 5년 만에 두 배 성장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한국식 10단계 스킨케어를 따라하는 것은 단순한 효능 때문이 아니다. 그 과정 자체가 ‘나를 존중하는 의식’이라는 판단에서다.
안다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성장했다. 단순 요가복을 판 것이 아니라 ‘움직임의 웰니스 리추얼’을 제안한 것이 적중했다. 요가복이 카페룩이 되고 레깅스가 출근복이 된 것은 옷의 기능 확장이 아니라, 운동이 일상적 웰니스 의식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베인캐피탈이 5,000억 원을 베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많은 K패션 브랜드들은 “우리 브랜드는 애슬레저도 아니고 스킨케어도 아니다. 웰니스와 연결 고리가 없다”고 말한다. 이 생각이야말로 가장 큰 오해다.
리추얼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고객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K뷰티는 그 일을 해냈다. K패션도 할 수 있다.
루틴은 습관, 리추얼은 정체성
MZ세대가 ‘오운완(오늘의 운동 완성)’을 SNS에 올리는 이유는 운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운동을 통해 ‘나를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같은 행동이라도 의미가 달라지는 순간, 루틴은 리추얼이 된다.
루틴(Routine)은 반복이지만다. 리추얼(Ritual)은 의미다. 루틴에 ‘나는 왜 이것을 하는가’라는 서사가 더해질 때 웰니스 리추얼이 완성된다.
K뷰티의 10단계 스킨케어가 좋은 사례다. 클렌징, 토너, 에센스, 세럼, 크림은 사실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스킨케어 단계다. 하지만 K뷰티는 그 과정을 ‘나를 정성껏 돌보는 시간’이라는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행동은 같지만 의미는 달라졌다.
모닝커피도 마찬가지다. 카페인 보충을 위해 마시면 루틴이다. 하지만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나를 위한 5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리추얼이 된다.

K패션의 리추얼은 이미 존재한다
“K뷰티에는 리추얼이 있지만 K패션에는 없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전략의 기회를 잃게된다.
몇 년 전 해외 SNS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보고 놀라워하는 장면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옷을 갈아입는다. 이런 나라는 처음 본다.” 이같은 반응이 나온 영상의 조회수는 순식간에 수백만을 넘었다.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 하지만 바로 그 당연함 속에 글로벌 시장이 발견하지 못한 웰니스 콘텐츠가 숨어 있다.
집에 돌아오는 순간 옷을 갈아입는 행위는 단순히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의 역할을 내려놓고 ‘밖의 나’에서 ‘집의 나’로 전환하는 의식이다. 긴장에서 이완으로, 사회적 역할에서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심리적 전환의 순간이다.
K뷰티가 ‘정성스러운 피부 관리’를 10단계 리추얼로 체계화했다면, K패션에는 이미 ‘외출복에서 집옷으로 갈아입는 문화’라는 리추얼이 존재한다. 우리가 아직 그것을 브랜딩하지 않았을 뿐이다.
K패션의 글로벌 언어
‘외출복을 집옷으로 갈아입기’는 그 자체로 글로벌 시장이 갖지 못한 한국만의 서사다. 이것을 ‘The Korean Art of Transition(한국의 전환 미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서구 사회에서는 일과 휴식의 경계가 무너지는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들에게 한국의 ‘옷 갈아입기 문화’는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 하루의 긴장을 내려놓는 의식적 루틴으로 읽힌다. 이 접점이 바로 K패션이 세계 시장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다.
K뷰티가 ‘관리의 시간’을 팔았다면 K패션은 ‘전환의 의식’을 팔아야 한다. 화장품이 아니라 돌봄의 태도를 팔았 듯, 옷이 아니라 공간과 자아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는 방식을 제안해야 한다.

리추얼을 브랜드로 만드는 4단계
그렇다면 브랜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고객의 일상에서 리추얼을 발견하라. 새로 만들 필요 없다. 외출 전 거울 앞 10분, 회의 전 재킷을 여미는 순간, 주말 아침 옷장 앞에서 머무는 시간. 이미 고객은 패션 리추얼을 실천하고 있다. 브랜드는 그것을 먼저 언어화 해야 한다.
둘째, 그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라. 습관을 리추얼로 바꾸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는다’라는 습관에 ‘하루의 역할을 내려놓고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의미가 더해지는 순간, 그것은 리추얼이 된다.
셋째, 제품이 아니라 태도를 디자인하라. 홈웨어 브랜드라면 ‘편한 옷’ 대신 ‘회복의 시간’을 이야기해야 한다. 출근복 브랜드라면 ‘매일 똑같은 지겨운 출근’이 아니라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태도를 제안해야 한다.
넷째, 고객이 리추얼을 경험하게 하라. K뷰티 브랜드들은 제품 설명서에 사용법이 아니라 리추얼을 담았다. 패션도 옷을 입는 방법이 아니라 그 순간의 의미를 보여줘야 한다.
이제는 K패션 차례
K뷰티는 이미 있던 한국인의 피부 관리 문화를 10단계 리추얼로 체계화해 글로벌 시장으로 키워냈다.
K패션도 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일상 속에는 ‘외출복에서 집옷으로 갈아입는 문화’라는 리추얼이 존재한다.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이고, 글로벌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리추얼은 문화가 되고, 문화는 시장이 된다. K뷰티가 그 길을 먼저 열었다. 이제 K패션의 차례다.
정의정 회장
dorri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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