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에서 동대문을 말할 때 흔히 시장 규모나 거래액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 숫자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인력 구조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동대문 도매 시장에는 현재 약 1,500명의 디자이너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지금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도매 시장과 거래하거나 관심을 가진 업계 종사자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1).jpg) |
|---|
|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의 화려한 곡선 뒤편, 낡은 상가 건물의 좁은 복도와 불 꺼지지 않는 매장들 사이에는 현재 약 1,500명의 디자이너가 활동하고 있다. |
대기업 출신과 현장파
동대문 디자이너의 출신 배경은 크게 두 경로로 나뉜다.
첫 번째는 브랜드 및 대기업 패션 회사 출신이다. 국내 주요 패션 대기업이나 백화점 입점 브랜드에서 경력을 시작한 이들이다. 시즌 컬렉션 기획, 상품 개발, 머천다이징 등의 실무를 거쳤으나 조직 내 의사결정 구조와 느린 직급 체계에 한계를 느끼고 독립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기획 프로세스와 시장 분석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동대문 시장에서 이를 즉각적인 상품으로 전환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두 번째는 실무 교육기관 출신이다. 국제복장학원, 라사라, 삼성패션학원, 코오롱패션학원 등을 거쳐 현장에 바로 투입된 인력이다. 원단 소싱, 샘플 제작, 매장 판매를 처음부터 경험하며 성장했기 때문에 상품 기획부터 생산, 판매까지의 전 과정을 실무 감각으로 다룬다. 트렌드를 이론으로 분석하기보다 시장 반응을 보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두 부류 모두 공통점이 있다. '팔리는 옷'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시즌 단위가 아닌 주 단위, 경우에 따라서는 일 단위로 상품을 기획하고 업데이트한다는 점이다.
소속 없이 매장 여러 곳을 동시에 담당
동대문 디자이너 대부분은 특정 매장에 소속된 직원이 아니다. 도매 매장 한두 곳, 많게는 서너 곳의 상품 기획을 외주 형태로 담당한다. 매장 측은 고정 인력을 두지 않아도 되고, 디자이너 측은 여러 매장을 동시에 관리하며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다.
일부는 자금이 쌓이면 직접 매장을 열기도 하지만, 기획과 디자인에만 집중하고 운영 리스크를 피하는 쪽을 선택하는 디자이너도 상당수다. 이 구조가 동대문 시장의 빠른 상품 회전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다.
(0).jpg)
국내 봉제 공장은 10년 안에 사라진다
동대문 디자이너들은 오랫동안 인근 창신동, 종로, 신당동 일대의 봉제 공장과 협력해왔다. 그러나 이 생산 기반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국내 봉제 숙련 인력의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현장을 떠나는 숙련공의 빈자리를 채울 후속 세대가 사실상 없다. 그 결과 국내 생산 단가는 크게 올랐고, 소량 오더 대응이나 납기 속도 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동대문 인근 국내 봉제 생산 기반은 길어야 10년 이내에 대부분 소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동대문 디자이너들의 생산 오더는 이미 상당 부분 해외로 이동했다. 중국 광저우·항저우, 베트남 하노이·호치민, 태국, 인도네시아가 주요 생산 거점이다. 오더는 메신저로 전달되고, 완성된 제품은 항공과 해운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다. 현장 디자이너들의 공통된 평가는 이렇다. "단가와 납기는 물론이고, 숙련도 면에서도 해외 공장이 국내를 앞서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이 아니다. 동대문 디자이너들은 사실상 아시아 전역의 봉제 공장을 직접 관리하는 공급망 운영자가 되었다. 디자인과 기획은 서울에서, 생산은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구조가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이들의 움직임이 곧 시장의 방향
동대문 도매 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패션 유통 채널, 플랫폼, 제조업체, 원단 공급사라면 이 1,500명의 움직임은 직접적인 비즈니스 신호다.
이들이 어디서 생산하고, 어떤 원단을 선택하고, 어느 공장과 거래하는지는 국내 패션 공급망 전체의 방향을 반영한다. 국내 봉제 공장과 거래하는 업체라면 수요 감소에 대한 현실적인 대비가 필요하고, 해외 생산 인프라를 보유한 업체라면 이 디자이너 그룹과의 연결 접점을 확대하는 것이 실질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동대문 디자이너 1,500명은 한국 패션 도매 시장의 상품 공급을 책임지는 실질적인 인력이다. 이들의 현황과 변화 방향을 파악하는 것은 이 시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jpg) |
|---|
| 오서희(Sylvia Oh)는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브랜드 레오나드(LEONARD PARIS) 바잉팀장을 거쳐 2001년 몬테밀라노를 창업했다. |
오서희 대표
montemilano@naver.com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