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 원 사이트 전략으로 K패션 경쟁력 한층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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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FW 서울패션위크는 집중과 혁신을 통해 K패션이 글로벌 트렌드 발신지로서 한 단계 더 도약했음을 증명한 무대였다. |
2월 초,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공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뜨거웠다.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열린 ‘2026 FW 서울패션위크’는 시작부터 이전 시즌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가장 큰 변화는 단연 ‘집중’이었다. 패션쇼, 프레젠테이션, 트레이드쇼, 서울패션포럼까지 모든 프로그램을 DDP 한 공간에 집약한 ‘원 사이트(One-site)’ 전략. 바이어들은 쇼와 쇼 사이 시간에 자연스럽게 쇼룸을 방문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둘러보며, 비즈니스 상담으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동선을 경험했다. 미디어와 인플루언서들 역시 이동 시간 부담 없이 더 많은 컬렉션을 취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디자이너 컬렉션의 노출 효과가 극대화됐고, 바이어와 미디어의 현장 체류 시간이 전년 대비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해외 바이어들은 “하루 동선 안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어 비즈니스 집중도가 훨씬 높았다”며 높은 만족도를 표했다.
런웨이의 밀도, 관객 체류 시간도 늘었다
DDP 아트홀 1관. 약 750석 규모의 런웨이에는 10개의 대형 LED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쇼가 시작되자 브랜드 콘셉트에 맞춘 영상과 조명이 공간을 압도했다. 무대 전환 역시 빠르고 매끄러웠다.
하루 2~3개의 쇼를 약 3시간 간격으로 배치한 전략은 현장에서 체감됐다. 입장과 퇴장, 무대 리셋이 여유 있게 이뤄지면서 관객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쇼와 쇼 사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프레젠테이션 공간이나 쇼룸을 찾았다.
결과적으로 현장 체류 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 미디어 관계자들은 “이동 시간이 줄어 더 많은 브랜드를 취재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한 장소 통합이 아닌, 산업 생태계 동선 자체를 재설계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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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부터 원로까지 균형 잡힌 컬렉션
이번 시즌에는 총 24개 브랜드가 참여해 15개 패션쇼와 9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다. 신예부터 중견, 원로 디자이너까지 균형 잡힌 라인업이 인상적이었다.
개막 쇼는 울마크 프라이즈 아시아 우승 경력의 한현민 디자이너가 이끄는 ‘뮌’이 맡았다. 클래식한 밀리터리 의상에 새로운 패턴메이킹 기법과 독특한 드레이핑을 더해 브랜드의 핵심 철학인 ‘낯설게 하기’를 명확히 표현했다. 특히 폐종이로 니팅한 스웨터, 폐현수막으로 작업한 드레스, 고무줄로 직조한 뷔스티에 등 환경을 생각한 소재 실험이 주목을 받았다.
김주한 디자이너의 ‘데일리미러’는 다양한 소재와 실루엣이 중첩되며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는 레이어드 미학을 선보였다. 매니시함과 페미닌함, 구조와 유연함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타일링을 넘어 시간과 선택, 실루엣을 중첩해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는 ‘상승의 레이어링’이 컬렉션 전반을 관통했다.
이청청 디자이너의 ‘라이’는 하이엔드 애슬레저를 스키 마운티니어링 영역까지 확장한 컬렉션을 공개했다. 오가닉 패브릭부터 아웃도어에서 사용되는 방풍, 방수, 메쉬 원단을 활용해 산에서의 기능을 도시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했다.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 ‘인수스’와의 협업을 통해 모듈화 가방, 테크니컬 의류, 기능성 악세서리 등 풍부한 라인을 선보였다. 런웨이 곳곳에서 지속가능성과 테크니컬 요소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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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막 쇼를 장식한 한현민 디자이너의 '뮌' |
친환경과 소재 혁신, K패션의 뉴노멀
글로벌 무역장벽과 유럽발 친환경 규제 등 국제적 흐름 속에서 이번 패션위크는 지속가능한 친환경과 소재혁신을 통한 K패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박소영의 ‘줄라이칼럼’은 재가공과 재생산을 통해 환경 보존이나 자원 절약 같은 물질적 개념을 넘어, 전통과 유산, 장인 정신과 심미안처럼 점차 잊혀져가는 예술적 가치를 지키고 되살리는 노력을 강조했다. ‘비스퍽’은 레이온과 코튼 같은 자연 친화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합성 섬유 대신 100% 내추럴 울과 캐시미어를 활용한 FW 소재에 무게를 두었다.
특히 최경호·홍현희 디자이너의 ‘홀리넘버세븐’은 소재의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 버려진 조각이 새로운 형태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탐구했다. 소재의 고유한 성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혀 새로운 소재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디자인으로 가장 주목받은 브랜드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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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리넘버세븐’은 소재의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 버려진 조각이 새로운 형태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탐구했다. |
전통과 현대, K문화의 정수를 담다
세계적인 K문화 열풍에 발맞춰 한국적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곽현주 디자이너는 한복의 ‘켜켜이 겹치는 치마 속 선(線)’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아, 조각보 디테일로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몽환적이면서 세련된 실루엣을 표현했다.
데님 개발자로 인정받는 권봉석 디자이너의 ‘비엘알’은 한국의 오래된 한옥, 젖은 흙길, 비가 스며든 돌계단처럼 자연과 인간의 시간이 공존하는 순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로 명성을 과시했다. 조성민의 ‘제이든초’는 사라져가는 한국적 정서를 패션을 통해 되살리며, 오트 쿠튀르 기법에 현대적 감각을 결합해 자수와 장인정신, 데드스톡 실크 활용 등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한국 전통 미감을 재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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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현주 디자이너는 조각보 디테일로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몽환적이면서 세련된 실루엣을 표현했다. |
기술과 예술의 만남
한나신은 세계 최초로 첨단 제조 기술 기업 ‘쎄타텍(Cetatech)’의 티타늄 3D 프린팅 출력물에 체코 전통 유리공예 아틀리에 ‘랄톤(Ralton)’의 수작업 크리스털 스톤을 결합한 테크 쿠튀르 피스로 시선을 압도했다. 런웨이 조명에 반사되는 구조적 실루엣은 기술과 장인정신의 공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박현의 ‘므아므’는 움직이는 순간 드러나는 내면의 표출을 테마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무의식의 잔상에 집중했다. 내면과 외면을 표현한 각각의 레이어드는 자연스럽게 라이닝을 드러내는 컷아웃과 브랜드 특유의 미니멀한 해체 기법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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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적 구조와 장인의 감각이 공존하는 테크 쿠튀르 피스를 완성한 한나신 |
글로벌 바이어와의 ?립? 비즈니스 성과 극대화
서울패션위크의 핵심 비즈니스 프로그램인 트레이드쇼는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DDP 디자인랩과 성수·한남 등 주요 패션 상권에서 진행됐다. 100여 개 브랜드가 참여해 20개국 해외 바이어 100명과 1:1 매칭 상담을 진행했으며, 바이어별 관심 카테고리와 가격대 등을 사전 조사해 상담의 밀도를 높인 점도 현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지난 2026 SS 시즌 745만 달러(약 104억 원)의 수주 상담 실적을 기록하며 매 시즌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서울패션위크는 이번 시즌에도 하비니콜스, 어반 아웃피터스, 클럽21 싱가포르 등 글로벌 주요 바이어가 방문했으며 미주·유럽 30%, 중화권 40%, 아시아·중동·오세아니아 30%로 구성된 바이어 분포는 지역 다변화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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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패션포럼 |
시민과 연결된 패션 담론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서울패션포럼’은 산업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문을 열었다. 로에베 코리아 욘 젬펠 지사장의 기조 발표에 이어, 글로벌 확장 전략과 AI·콘텐츠·브랜드 확장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패션 산업 담론이 전문가 영역을 넘어 대중과 공유되는 장면이었다.
K패션, 글로벌 무대의 중심으로
혹한의 강추위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진행된 2026 FW 서울패션위크는 패션 이벤트를 넘어 K패션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현장에서 느껴진 가장 큰 변화는 속도와 밀도였다. 동선이 줄어들자 비즈니스는 빨라졌고 집중도는 높아졌다. 친환경과 소재 혁신, 전통과 기술의 결합은 K패션의 현재를 보여줬다.
이번 서울패션위크는 K패션이 글로벌 트렌드 발신지로서 한 단계 도약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체감하게 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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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heejung@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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