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패션위크의 ‘온도’와 서울패션위크의 ‘열망’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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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쇼는 디자이너가 구축한 세계관을 15분 안에 보여주는 압축된 영화와 같다. |
패션위크의 중심은 파리다. 뉴욕에서 시작해 런던, 밀라노를 거치지만, 최종 판단은 파리에서 내려진다. 이것은 관습이 아니라 현실이다. 파리가 패션의 종착지로 남아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오래된 아카이브와 가장 견고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파리에서 패션을 배웠다. 매년 2월과 7월, 파리패션위크는 단순한 관람 일정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 타당한지를 다시금 확인하는 검증의 시간이었다. 화려한 쇼 뒤에는 냉정한 현실이 있었고, 파리는 결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초대장이 곧 자격이었던 시절
90년대 중반 샤넬이나 이브 생 로랑의 오뜨 꾸뛰르 쇼에 입장하려면 초대장이 필요했다. 이것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실질적인 진입장벽이었다. 초대장이 없는 유학생은 쇼장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캉봉 거리 근처를 서성이며 기회를 노렸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마치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처럼 행동했다. 보안요원을 피해 관계자의 동선을 관찰하고 어떤 에디터의 배려로 말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그 순간의 감정은 기쁨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 통과했다는 확인, 그리고 아직 멀리 가야 한다는 자각.
조명이 꺼지고 쇼가 시작되면 공간은 완전히 달라진다. 음악, 조명, 모델의 워킹, 관객의 침묵까지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다. 패션쇼는 옷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다. 디자이너가 구축한 세계관을 15분 안에 보여주는 압축된 영화다.
‘15분의 런웨이’지만 15분으로 끝나지 않는 쇼
쇼장에 들어서면 좌석마다 무언가가 놓여 있다. 봉투, 상자, 책자. 이것을 단순한 기념품으로 보는 사람은 그 의미를 놓친 것이다. 이 오브제는 디자이너가 관객에게 보내는 구체적인 메시지다.
샤넬의 경우, 쇼에서 받는 선물은 캉봉 거리 31번지 아카이브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코로만델 병풍의 패턴,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에 있던 오브제의 색감, 계단을 내려다보는 시선의 각도. 작은 선물 하나에 수십 년의 미학적 축적이 압축되어 있다.
이 선물이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쇼는 15분으로 끝나지 않는다. 관객이 집으로 돌아가 상자를 열고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쇼는 계속된다. 럭셔리 하우스가 패션쇼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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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속도가 아닌 시간
2026년 2월 파리 패션위크는 여전히 느렸다. 빠른 유행을 좇지 않았고 디지털 속도에 휘둘리지도 않았다. 파리는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장인, 아뜰리에, 아카이브, 시간.
럭셔리 하우스의 컬렉션은 ‘새로움’보다 ‘정의’에 가깝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브랜드는 무엇을 믿는가, 어떤 고객을 상정하는가. 파리의 쇼는 이 질문을 중심에 둔다. 그래서 파리는 매 시즌 트렌드를 만들지 않아도 기준이 된다.
샤넬이 이번 시즌에도 트위드를 다시 꺼낸 것은 안전한 선택이 아니다.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클래식은 반복이 아니라 사유의 연속이다. 파리는 이 사실을 계속 증명하고 있다.
도약의 도시 서울의 패션위크는?
2026년 2월 3일부터 8일까지 열린 서울패션위크는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했다. 봄 같던 공기가 하루 만에 차가워졌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속도와 긴장이 그대로 반영된 일주일이었다.
20분 남짓한 쇼를 위해 디자이너들은 몇 달을 투자한다. 패턴 수정, 원단 교체, 음악 선정, 모델 동선 점검. 한 디자이너에게 쇼가 끝난 후의 감정을 물었다. “너무 좋아요. 해냈다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벌써 다음 시즌을 생각하게 돼요.”
서울의 디자이너들은 젊다. 그래서 더 치열하다. 파리가 축적의 도시라면 서울은 도약의 도시다. 그 열망은 거칠지만 분명 살아있다.
패션쇼가 존재하는 이유
디자이너에게 패션쇼는 신상품 발표회가 아니다. 90년대 파리의 예술성과 2026년의 자본 논리가 충돌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 묻는다. 왜 여전히 막대한 비용을 들여 15분의 쇼를 하는가.
첫째, 패션쇼는 디자이너의 세계관을 선포하는 가장 압축된 형식이다. 옷은 움직일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빛, 소리, 인간의 몸과 만날 때 옷은 살아난다.
둘째, 쇼는 창조적 긴장감을 만든다. 마감이 없는 창작은 진화하지 않는다. 런웨이라는 압박이 디자이너를 성장시킨다.
셋째, 쇼는 무형의 가치를 유형의 권위로 전환한다. 옷보다 그 옷이 품고 있는 태도와 기억, 즉 아우라를 만드는 과정이다.
서울패션위크가 세계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무대나 더 많은 셀러브리티가 아니다. 지금 서울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그 속도를 견딜 수 있는 기록이다. 시즌마다 반복되고 축적될 때 비로소 브랜드는 시간을 갖게 된다. 시간이 쌓여야 아카이브가 되고, 아카이브가 쌓여야 권위가 생긴다.
파리는 여전히 차갑고 단단하게 중심에 서 있고, 서울은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패션의 미래는 어느 한쪽에만 있지 않다. 축적과 열망이 만나는 지점,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런웨이 위에서 모델과 옷이 하나가 되어 걷는 그 짧은 순간, 디자이너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쇼를 한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향한 집념을 버리지 않는 한, 패션쇼라는 형식은 단언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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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숙 대표
lemer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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