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손으로 만들던 봉제 조차 로봇이 알아서 척척
패션산업에서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디자인과 트렌드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변화는 옷의 형태가 아니라 공장의 풍경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 사람이 교대하지 않는 생산라인, 여기에 야간수당도, 휴게시간도, 파업도 없는 24시간 공장. 상상이 아니다.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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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직접 그리지 않아도 되고 패턴을 몰라도 되고 봉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해진 것은 만드는 이유와 선택할 수 있는 감각이다. |
머스크는 알고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AI와 로봇이 결합된 시대에는 로봇이 직접 생산을 맡게 될 것이고 그 순간부터 경제의 규칙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흥미로운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결과 때문이다. 생산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하면 돈의 가치는 지금과 같을 수 없다. 디플레이션은 더 이상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된다. 그가 테슬라 공장에서 실험한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 없는 생산’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성공했다.
산업 지형 변화와 패션
AI 로봇이 가장 먼저 들어가는 곳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같은 정밀 제조 산업이다. 이미 많은 공장에서 로봇을 들이고 있다.
그 다음은 요식업이다. 조리 로봇, 서빙 로봇, 무인 매장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서울 어딘가의 카페에서는 이미 바리스타가 사라졌다. 로봇 팔이 라떼아트를 그린다. 손님들은 신기해하다 이내 익숙해진다. 이제 남은 영역이 바로 패션이다.
특히 봉제 영역에서는 늘 이렇게 말해왔다. “이건 사람 손이 아니면 안 된다.”
디자인 드로잉, 패턴, 재단, 봉제, 실밥 처리, 폴리백 포장, 택배 발송까지 패션산업은 이 모든 단계에 ‘사람 손’이 필요하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정말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AI는 이미 디자인을 그린다. 패턴도 계산한다. 재단은 로봇이 더 정확하다. 봉제 역시 불가능이 아니라 단가의 문제로 이동 중이다.
실제로 중국의 한 공장은 2023년부터 봉제 로봇을 시범 운영 중이다. 티셔츠 한 장을 7분 만에 완성한다. 사람보다 빠르진 않지만 24시간 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이겼다.
만약 로봇이 소량 생산을 잘하고 유연한 소재를 다루고 다양한 사이즈를 즉시 전환할 수 있다면, 패션산업에서 사람이 붙잡고 있던 마지막 영역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무너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남은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자동화의 끝에서 가장 빛을 보는 사람은 기획을 잘하는 사람이다.
이제는 직접 그리지 않아도 되고 패턴을 몰라도 되고 봉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지 떠올릴 줄 아는 능력이다.
AI는 실행한다. 로봇은 만든다. 광고는 진화된 메타가 알아서 돌린다. 남는 것은 아이디어, 조합, 타이밍, 맥락 즉, 기획자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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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의 역할은 완전히 바뀐다
앞으로 오너는 공장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 사람을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아이디어를 던지고 기준을 정하고 선택의 방향을 결정한다.
하루의 대부분은 회의가 아니라 상상에 쓰일지도 모른다. 이 옷은 어떤 날 입게될까. 이 제품은 누구의 어떤 불편을 덜어줄까. 왜 지금 이 옷이 필요할까 등.
AI는 이 질문에 수천 개의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어떤 답을 고를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오너는 이제 경영자가 아니라 큐레이터에 가까워진다. 무한한 선택지 속에서 단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기획자이자 오너이다.
자동화된 뒤에 남는 것
광고는 설득이 아니라 최적화가 된다. 생산은 기술이 아니라 버튼이 된다. 물류는 고통이 아니라 시스템이 된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동화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취향, 감각, 사람의 하루…
AI는 이것을 학습할 수는 있지만 직접 살아본 적은 없다. 그래서 브랜드는 점점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감각을 가졌는가’로 기억된다. 애플이 기억되는 이유는 아이폰을 만들어서가 아니다.
‘심플함’이라는 감각을 관철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모든 브랜드는 이런 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디플레이션 시대, 오히려 비싸지는 것들
모든 것이 싸지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값이 오르는 것이 있다. 아이디어와 해석력, 브랜드의 세계관과 기획자의 언어, 공감능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중요해진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 옷의 가격은 내려갈지 모르나 기획의 가치는 올라간다. 이건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
챗GPT가 나온 뒤, 글 쓰는 사람의 몸값은 떨어졌을까?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의 가치는 더 올랐다. 도구가 좋아질수록 그걸 쓰는 사람의 감각이 더 중요해진다.
AI 로봇이 공장을 점령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만들 수 있습니까?”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떠올릴 수 있습니까?”
손은 필요 없어질지 몰라도 감각과 상상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공장은 24시간 돌아가겠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여전히 사람의 번쩍임에서 시작된다. 아마도 그 번쩍임 하나가 다음 브랜드를, 다음 산업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면, 혹은 준비하고 있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왜 만드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기술은 빠르게 따라온다. 하지만 ‘당신만의 이유’는 아무도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로봇이 옷을 만드는 시대에서 살아남는 건 가장 빠른 공장이 아니라 가장 선명한 이유를 가진 브랜드일 것이다.
이정준 대표
brpc@brepea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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