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위해 버리지 않고 다시 발명하는 지혜 주목
인간이 처음 옷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이 닿았던 소재는 동물의 가죽과 모피였다.
혹독한 바람을 막아주고, 생존을 보장해주던 이 따뜻한 외피는 인류가 문명을 확장해 나가는 여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모피를 단순한 보온재가 아닌 부·권력·품위의 상징으로 해석해 왔고, 특유의 촉감과 광택은 여전히 본능적 매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동물성 모피는 사육, 포획, 도살 과정의 잔혹성으로 오랫동안 비판받아 왔고, 브랜드들은 모피 사용 중단 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윤리를 지키기 위해 등장한 합성 모피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폴리에스터와 아크릴로 만들어진 합성 모피는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고, 수백 년 동안 분해되지 않는다. 동물은 살렸지만, 지구는 또 다른 고통을 떠안는 아이러니한 결과다.
이처럼 ‘동물성 모피는 윤리 문제, 합성 모피는 환경 문제’라는 이중 딜레마 속에서 패션 산업은 이제 '지속가능한 모피 감성'이라는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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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티코는 모피 감성의 현대적 재해석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https://www.theattico.com) |
The Attico(디아티코) - 고급 인조모피 시대를 연 하이 패션의 감성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디아티코(The Attico)는 모피 감성의 현대적 재해석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이들의 시그니처는 볼륨감 있는 실루엣, 강렬한 텍스처, 오버사이즈 코트로 요약된다. 실루엣 자체가 권위와 당당함을 드러내기 때문에, 모피 특유의 존재감이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디아티코는 윤리적 논란을 피해가면서도 모피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인조모피를 적극 활용한다. 사치스러운 볼륨과 고급스러운 광택을 유지하면서도 동물 모피를 쓰지 않는 방식이다. 그들의 인조모피 코트는 레이온과 나일론, 울·폴리 혼방 등으로 구성되며, 촉감·광택·입체감을 구현하기 위해 섬세한 밀도 조절과 후가공을 적용한다.
그러나 이는 고급 하이패션 브랜드의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다. 인조모피는 잔혹성은 없지만 석유 기반 합성섬유의 사용, 미세플라스틱 문제, 재활용 어려움이 여전히 남는다. 디아티코의 사례는 우리가 모피의 미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지속가능성의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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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출신 바이오 디자이너 첸수이는 런던의 침입 외래식물을 채집해 그 잎과 줄기를 활용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전개했다.(https://www.texintel.com/press-room) |
식물성 퍼의 등장 : 中 첸수이의 ‘바이오 인베이시브 퍼’
동물 모피나 합성 모피 모두 한계를 드러낸 지금,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중국 출신 바이오 디자이너 ‘첸수이’다.
그녀는 런던의 침입 외래식물을 채집해 그 잎과 줄기를 활용한 ‘바이오 인베이시브 텍스타일 라이브러리(Bio-Invasive Textile Library)’라는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침입종 제거가 생태계 보전에 필수적이라는 점에 주목한 그녀는, 이 식물들을 섬유·염료·파일 구조의 원료로 변환한다. 이 과정은 동물 모피도, 플라스틱 모피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새로운 접근이다.
첸은 모발 이식 기계에서 착안한 ‘임플랜팅(implanting)’ 기술을 활용한다. 바늘 구조가 직물 내부에서 식물성 섬유를 위로 끌어올려 퍼와 유사한 장모(long pile)를 만들어낸다. 이 방식은 파일 길이·방향·밀도를 디지털로 제어할 수 있어, 모피가 가진 시각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식물 기반의 지속가능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그녀의 프로젝트는 염색 과정까지 철저히 지속가능성 중심이다. 화학 매염제를 쓰지 않고 침입식물의 특성을 활용해 다양한 색감을 구현한다. 이는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을 돌보면서 만드는 모피 질감’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감성 세계다.
첸수이의 작업은 모피와 가장 먼 지점에서 시작해 오히려 가장 ‘미래적인 모피’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피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모피의 감성 자체를 재창조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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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에이걸즈가 개발중인 스파이버의 브루드 프로틴 단백질 섬유를 활용한 바이오 기반 퍼는 기존 합성 인조모피가 가진 환경 문제를 줄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텍스처를 구현할 수 있다.(https://spiber.inc/en/news) |
日 에이걸즈 : 니트 자카드로 만든 ‘짜여진 타이다이 퍼’
일본 와카야마의 니트 텍스타일 브랜드 에이걸즈(A-GIRL'S)는 또 다른 차원의 해법을 제시한다. 이들은 모피를 모방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원단 구조 자체로 타이다이·퍼 질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에이걸즈는 공간 염색사(space-dyed yarn)와 자카드 편성 기술을 활용해 염색 없이도 얼룩지고 번진 듯한 무늬를 직물 구조만으로 표현한다. 이는 타이다이 특유의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을 프린트나 화학 염색 없이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 조직 기술이 파일 자카드(pile jacquard)와 결합하면 퍼처럼 솟아 있는 표면, 타이다이처럼 번져 보이는 패턴, 적은 염료 사용과 낮은 폐수 발생이라는 세 가지 효과가 동시에 구현된다.
게다가 에이걸즈는 스파이버(Spiber)의 브루드 프로틴 단백질 섬유를 활용한 바이오 기반 퍼도 개발 중이다. 이는 기존 합성 인조모피가 가진 환경 문제를 줄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텍스처를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퍼 소재다.
이들의 접근은 ‘모피의 형태를 본뜨지 않고, 직물 구조 자체를 재해석해 모피의 감성과 타이다이의 예술성을 결합한’ 매우 독창적인 방식이다.
모피의 미래는 '재현'이 아니라 '재창조'에 있다
모피는 더 이상 '죽거나 살리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선택하느냐, 어떤 감성을 유지하고 버리느냐에 달린 문제다.
미래의 모피는 동물을 해치지 않고, 플라스틱을 쏟아내지 않으며,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지속가능하게 재탄생해야 한다.
모피의 매혹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져야 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모피를 만들어온 방식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는 모피의 감성을 지키면서도 지구와 공존하는 새로운 방식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김원 대표
nyxnox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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