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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력사와 본사는 한 배를 탄 경제공동체 |
패션업계에 만연한 ‘카더라 문화’와 갑질의 민낯
최근 패션·유통 업계를 뒤흔든 H 브랜드 사건을 보며, 오래전부터 목격해온 이 업계의 고질병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말 일회성 해프닝인가, 아니면 우리 업계 전체에 뿌리 깊게 박힌 구조적 문제인가.
같은 업계에서 20년 넘게 밥을 먹어온 사람으로서 이번 사건을 그냥 넘길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이미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악의 없는 이야기들이 만드는 지옥
“악의는 없었어요.” 험담을 전달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변명이다. 정말 그럴까? 정작 자기 눈으로 보지도, 귀로 듣지도 않은 이야기를 “그 사람이 그랬대”, “어디서 들었는데 말이야”라며 옮긴다. 본인들은 단지 정보 공유를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상대방을 해치려는 명확한 악의를 가진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그냥 무심코, 습관적으로, 별 생각 없이 말을 옮긴다. 업계에 떠도는 소문을 마치 날씨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악의가 없다고 해서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잔인하다. 말로 찌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무기를 휘둘렀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 출처가 불분명한 말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평판에 치명타를 입힌다. 이 업계에서 평판은 곧 생존이다. 한번 깎인 신뢰는 복구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 어떤 경우엔 영영 회복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표적이 된다
더 씁쓸한 건, 이런 험담들이 대체로 이미 잘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다는 점이다. 잘나가는 디자이너, 성공한 MD, 주목받는 브랜드 오너. 눈에 띄는 사람일수록 뒷담화의 타깃이 되기 쉽다.
왜일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간단하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림으로써 심리적 평형을 찾으려 한다. “저 사람도 사실은 별거 아니야”, “뒤에선 저런 사람이래”라는 말 한마디로,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는 것 같은 착각을 얻는다.
하지만 이건 착각일 뿐이다. 남을 깎아내린다고 내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잘되는 경우를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업계는 생각보다 좁고 말은 반드시 돌아온다. 신뢰를 잃으면 끝이다.
잘난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며 “그래도 난 저들보단 낫지 않냐”는 식의 합리화는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 에너지로 자기 일이나 제대로 했으면 진작 성공했을 사람들이다.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투명하게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설령 그 말이 100%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굳이 여기저기 퍼뜨릴 필요가 있는가?
누군가 정말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정식 절차를 밟아서,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랬대, 저랬대’ 식의 뒷말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진실을 왜곡하고, 불필요한 피해자만 양산한다.
“우리끼리인데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사석과 공석의 경계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한두 명에게 한 말이 업계 전체에 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하루면 충분하다.
말의 경솔함, 전달의 무책임함은 학습된 습관이다. 한번 입에 붙으면 고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젠가 반드시 본인에게 돌아온다.
2026년에 여전히 이런 방식이라니
이번 H 브랜드 사건에서 또 하나 충격적이었던 건, 갈등 해결 방식이었다. 감정이 상했다고 해서 상대를 불러 강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 이건 너무 오래된, 구시대적 방법이다.
지금이 몇 년도인가? 2026년이다. 패션 산업은 창의성과 감성, 그리고 성숙한 커뮤니케이션 위에서 성장하는 산업이다. 힘으로 누르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아니, 통해서는 안 된다.
물론 폭력이나 거친 언행은 그 자체로 용납될 수 없다. 사업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건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건을 특정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면 안 된다. 이건 우리 업계 전체의 문제다.
우리는 모두 이 생태계의 일부다. 누군가는 말을 만들고 누군가는 말을 전하고 누군가는 그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받고 무너지고 떠난다. 그렇게 우리는 인재를 잃고 신뢰를 잃고 결국 산업 전체가 함께 추락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패션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산업이다. 그런데 정작 이 산업에 몸담은 사람들이 서로를 추하게 만들고 있다면, 이건 아이러니를 넘어 비극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간단하다. 말과 태도가 먼저다
옷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비싼 옷을 걸치면 일시적으로 멋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말과 태도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
패션 산업이 정말로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면, 옷이 아니라 사람부터 아름다워져야 한다. 그 시작은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 상대를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에 있다.
이번 H 브랜드 사건이 단순한 스캔들로 소비되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내뱉은 말은 언젠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 이것을 잊지 말자.
오서희 대표
montemila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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