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문양이 현재의 언어가 되는 순간…25FW 감성으로 재탄생
패션은 늘 미래를 꿈꾸지만, 그 미래는 언제나 과거를 닮아 있다.
2025 F/W 시즌 런웨이에서는 오래된 문양이 다시 활보하고 있다. 체크, 트위드, 다이아몬드, 기하학 문양이 세대를 넘어 부활했고 낡은 직물이 새롭게 숨을 쉰다. 글로벌 브랜드에서 신진 디자이너까지 모두가 과거의 서랍을 열고 그 안에서 새로운 미래를 꺼내들고 있다.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오히려 천천히 낡아가는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했다. 화려한 혁신보다 익숙한 무늬에서 위로를 느끼고, 새로운 스타일보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주는 옷에 마음을 둔다. 매 시즌 쏟아지는 트렌드의 속도에 지친 이들은, 이제 시간이 쌓인 옷에서 진정성을 발견한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헤리티지 패턴(Herita ge Pattern)’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복고풍이 아니다. 패턴 하나하나에 세월의 결, 기억의 색, 손의 온도가 깃들어 있다. 마치 오래된 가족 앨범을 넘기듯, 한 벌의 니트 속에서 이야기가 되살아난다. 할머니의 스웨터, 할아버지의 재킷, 어머니의 스카프. 그 속에 담긴 시간의 무게가 지금 다시 패션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 헤리티지 패턴을 움직이는 세 가지 키워드
첫째, 향수와 정체성의 욕구.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오랜 문양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나의 정체성을 다시 꿰맨다. 헤리티지 패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스코틀랜드의 타탄 체크, 아일랜드의 아란 니트, 북유럽의 페어아일 문양 등 그 안에는 가족의 역사, 지역의 자부심, 세대를 잇는 감각이 담겨 있다.
둘째, 슬로우 크래프트(Slow Craft)의 확산. 산업화된 패스트 패션 시스템에 대한 피로가 커지며, ‘손의 시간’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느리게 짜인 니트, 손자수의 불균형한 결, 천연 염색의 미묘한 흔적이 오히려 진정성을 증명한다. 기계가 찍어낸 완벽함 보다 사람의 손이 남긴 미세한 오차가 더 큰 가치를 갖는 시대다. 이는 단순히 미학적 선택을 넘어, 지속가능성과 윤리적 소비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셋째, 문화적 고유성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적 요구. 이제 브랜드는 단순히 ‘무엇을 입느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왔느냐’를 말해야 한다. 지역의 상징, 전통의 문양, 세대를 잇는 감각이 브랜드의 새로운 언어가 된다. 글로벌화된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로컬 가치가 부상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자신만의 문화적 내러티브를 담은 옷을 찾는다. 헤리티지 패턴은 그 욕구에 가장 직접적으로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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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코사 |
◇ 남아프리카의 자부심, 마코사
2011년 남아프리카의 디자이너 라두마 응소콜로가 창립한 ‘마코사’는 코사족의 전통 공예인 비드워크에서 출발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색채와 기하학적 문양(화살표, 다이아몬드, 지그재그)을 니트웨어로 변주하며 전통을 현대의 럭셔리 코드로 풀어냈다. 니트의 리듬감 속에 공동체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담고, 한 벌의 스웨터가 문화적 선언문이 되는 브랜드이다. 그의 디자인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아프리카 대륙의 존엄과 현대성을 동시에 증명한다.
마코사의 색상은 다채롭지만 결코 혼란스럽지 않다. 전통 문양의 상징적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실루엣과 스타일링으로 세련된 인상을 완성한다. ‘유산의 현대화’를 가장 정직하게 실현하는 사례이자, 아프리카 패션의 세계화를 이끈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마코사는 이제 뉴욕, 런던, 도쿄의 편집숍에서 만날 수 있으며, 전통이 글로벌 언어로 번역될 수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https://maxhosa.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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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마라스 |
◇ ‘사르데냐’의 기억을 짜는 시인, 안토니오 마라스
‘안토니오 마라스’는 1961년 사르데냐(이탈리아의 섬)에서 태어나 1987년 첫 컬렉션을 발표했다. 1999년 밀라노 패션위크에 데뷔했고, 2003년부터 2011년까지 LVMH 산하 겐조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동하며 감성적 디자이너로 명성을 쌓았다.
그의 근원은 늘 고향 ‘사르데냐’다. 마라스의 옷에는 사르데냐 전통 복식의 자수, 금실 장식, 울과 실크의 질감이 교차하며, 섬의 역사와 사람들의 기억이 엮여 있다. 그의 컬렉션은 옷이기 이전에 하나의 전시이자 시이자 회상의 조각들이다.
그의 헤리티지 패턴은 단순한 체크무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돌산과 바람, 바다와 회상의 색채가 옷의 조직감으로 번역되고 과거와 현재가 시적으로 공존한다.
레이어링된 프린트, 손으로 그린 듯한 불규칙한 선, 빈티지 레이스와 현대적 컷의 충돌 등 그의 디자인은 단번에 시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마라스에게 패턴은 장식이 아니라 기억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며, 입는 사람은 그 기억의 일부가 된다.(https://antoniomarr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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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오헴 |
◇ 일본의 장인정신을 입은 니트, 코오헴
1952년 설립된 야마가타현의 니트 공장 요세토미 세니는 일본 니트 산업의 기술적 근간을 이루어왔다. 이 전통 위에서 2010년, 젊은 감각의 공장 브랜드 ‘코오헴(Coohem)’이 탄생했다. 브랜드명은 일본어 ‘교편(交編, K?hen)’에서 유래하며 여러 종류의 실을 교차 편직하여 독특한 질감을 만드는 기술을 뜻한다.
코오헴의 니트는 니트이면서도 트위드처럼 보인다. 굵기, 색상, 질감이 다른 실을 섬세하게 조합해 만들어지는 직물은 빈티지하면서도 미래적인 감각을 동시에 준다. 멀리서 보면 샤넬의 트위드 재킷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니트의 부드러운 유연함이 느껴진다. 이 모순적 조화가 코오헴의 정체성이다.
모든 제작은 공장 내부에서 이뤄지며 기술자와 디자이너가 협업해 새로운 직조를 실험한다. 한 시즌에 수십 가지 샘플이 만들어지고, 그 중 몇 가지만이 최종 컬렉션에 간택된다. 그 결과 코오헴은 공장을 단순 생산지가 아닌 창조의 무대로 바꾸었다.(https://www.coohem.jp)
◇ 패턴의 다양성, 감성의 확장
25FW 시즌의 헤리티지 패턴이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개인적 의미와 다양성의 회복에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트렌드를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자신과 연결되는 감정, 취향, 문화적 스토리를 찾는다.
헤리티지 패턴은 그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각자의 문화에서 출발한 문양과 색, 질감을 새로운 방식으로 믹스&매치함으로써, 세대와 지역을 넘어 공감의 언어가 된다. 체크와 플로럴, 트위드와 데님, 울과 실크가 한 벌의 옷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시대, 그 속에서 전통은 더 이상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재료로 되살아난다.
김원 대표
nyxnox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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